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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순수의 시절은 멀어졌지만

어쩌다 내 안에 남아있는 순수를 인지할 때면 이런 물음과 답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다행인가?"

"흠...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다는 게 나쁘지는 않아."
 
한때는 순수를 쫓아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순수의 시절은 저만치 멀어졌으니까요.
살아보니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는 말에 수긍하게 되더군요. 젊은 날에만 깃드는 개개인의 거칠고 투박한 생각과 행동이 있었을 것이고, 세련된, 어떻게 보면 약은, 중년의 생각과 행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년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내 '그건 멋모르던 때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뒤따르는 걸 보면 '별수 없이 꼰대가 되고 말았구나'라는 허탈감도 듭니다.
내게서 멀어진 순수함이 아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부질없다는 생각이 서로 교차하더군요. 하지만 결론은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맙니다.
 
돌이켜 보건대, 순수한 마음은 상처받기 쉬웠습니다. 어리고 나약하고 순진하기 때문이겠죠.

하여 순수의 마음은 상처 속에서 자연스레 퇴색되었고, 한쪽 구석으로 감춰뒀던 것 같습니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자기 방어의 본능이 작용한 탓이겠지요. 아마도 이런 식으로 우리는 점점 순수로부터 멀어져 온 것이겠지요.
 
이젠 더 이상 어리고 순진하지 않습니다만, 내게 남아 있는 순수를 발견할 때면,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방어적으로 변하는 걸 알겠더군요. 하지만 그다지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요. 더는 순수함에 경도될 만큼 순진하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중년이 된 사내에게 미약하게나마 순수함이 남아 있음을, 그럭저럭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흐흐, 꽤나 순수하지 않나요?)

이 마음을 접은 지는 오래됐지만, 자신과 주변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나, 그도 아니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 되고픈 욕심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 사실, 이것조차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은 욕심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사는 걸 보면, 아직 내 안에 순수함이 조금은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중년의 나이에도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는 여전히 외롭고, 타인과 자신으로부터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므로 밑바닥에 순수함이 남아 있는 중년들이라면, 마음 통하는 누군가와 만나 가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 보세요. 서로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 보세요. 

그건 아마도...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외롭지만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애써 확인하고픈 마음이 아닐까요.

이미 멀어진 순수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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