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서 만난 뭉크1(국립 미술관)
대학교 3학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친구의 친척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꺼내든 뭉크 화집,
그 속에서 숨이 콱 막힐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내 어둡고 답답한 의식과 그의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숨막힐 듯 답답한 슬픔의 이미지를 동일시 했었다. 그 후 뭉크의 그림에 집착되었다.
그리고 뭉크를 직접 본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 이제 그 뭉크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먼저 오슬로 대학 옆에 있는 국립 미술관을 찾아 간다.
거기에 뭉크의 작품이 꽤 있었다. 흥분된 마음로 그간 화집으로 보았던 그림들을 보면서 그 느낌들을 간략하게 메모했다.
먼저 너무도 유명한 ‘마돈나’ 이 작품은 뭉크 미술관에서 여러 다른 모티브로 다시 만났다.
이 작품 앞에서 나는 ‘쾌락과 절망’이란 말을 기록했다.
이 그림에서 관능, 섹스, 쾌락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왔지만 절망이라는 말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림에서 풍기는 쾌락 뒤에 오는 허무함을 읽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ashes’라는 작품이다.
멍한 여자의 시선과 마치 재가 되어 떨어질 것 같은 산발한 여자의 머리, 그 위로 불안하게 올려놓은 손, 그러나 내 시선은 처음부터 빨간색 블라우스로 달려간다.
그리고 여자를 버려두고 왼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는 하는 좌하귀에 위치한 검은색 옷의 사내를 붙잡는다. 아! 범해서는 안될 여자를 범해버린 남자의 절망이 느껴온다.
이 그림을 보며 ‘섹스 후의 절망’ 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누이동생 잉게르의 초상’ 앞에서 ‘무섭도록 답답한 응시’ 라고 적었다.
바닥과 벽이 입체감이 없고 그저 색깔로 구분이 되어 웬지 불안하고 장례식에서 입는 듯한 검은 옷에 자주색 무늬가 들어가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원래 출품당시 ‘검은 색과 자주색의 조화’라는 제목으로 출품 했단다.
근데 제목 중에 조화라는 말이 좀 어울리지 않고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자의 무섭도록 담담한 응시와 가지런히 모은 두 손, 목까지 올라오는 답답한 원피스때문 일 것이다.
흡사 무슨 저승사자가 내 앞에 서있는 듯 했다. 아마 이곳이 장례식장일거라고 생각 했다.
이 국립 미술관을 나와 ‘뭉크 미술관’에서 이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바로 옆의 이 그림 ‘병실에서의 죽음’이란 작품에서였다.
그랬다, 장례식장이 맞았다.
그의 그림에서 피어나는 죽음의 이미지는 끝이 없었다.
‘병든 아이’
이 작품은 뭉크의 누나 소피에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있는 이모의 모습이다.
누나의 시선은 멍하고 어쩌면 담담하거나 오히려 이모를 위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뭉크가 어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돌아 가셨고 9년 후 누나 소피에도 똑 같은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에게서 죽음은 늘 삶과 동일시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이모를 위로하는 듯한, 모든 걸 내던진, 모든 걸 다 알아버린 소녀’ 라고 적었다.
‘the day after’
이 그림은 섹스 후 다음날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침대에 거꾸로 비스듬히 누운 채 팔을 늘어 뜨리고 있는 모습은 왠지 불안하다.
나는 ‘패배와 좌절 혹은 공허’라고 적어 두었다.
‘사춘기’
이 작품은 솔직한 표현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15살 정도의 사춘기를 맞은 소녀의 나신은 막 부풀기 시작한 가슴이 노출되어 있고 불안과 수줍음으로 음부를 가렸고 반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조심스러움으로 가득한 눈을 볼 수 있다. 호기심과 불안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