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그해 여름”

난척 선생 2007. 4. 1. 16:14
그해 여름 (Once In A Summer, 2006)
감독 :조근식
출연 :이병헌, 수애, 오달수, 이세은, 정석용

 

나를 무너트린 영화  "그해 여름"

 

 

당신은 이 영화에서 사랑영화의 뻔함을 그러나 결코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셀러리맨 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금요일의 늦은 밤, 퇴근길은

노동의 5일을 간직한 묵직한 어깨의 귀가와 주말을 맞이하는 안도감이

교차되는 그러한 이중성의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길인 것이다. 

 

3 31새벽 2인 지금, 나는 이렇게 자판을 두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바로 5시간 전쯤인

어제 3 30,

 

여느 샐러리맨과 다름없는 나는 기분 좋게 한 달을 마무리하고 예의 피곤한 어깨로 그러나 주말

을 향한 안도의 이중성을 나란히 지닌 채 집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밤이면 영화 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는 우리 부부,

 

처음 집사람은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를 빌려왔고 이 영화는

내가 설 특집 TV로 이미 봐버렸기 때문에 다른 영화로 바꾸러 가야만 했다.

그렇게 무심코 선택한 영화가 오늘 소개할 병헌 수애 주연의 그해 여름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를 야금야금 무너뜨린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말 그랬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흐르고 음악이 흐르는 동안 눈물을 줄줄 흘렸던 나는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애써 이런 생각들을 주워 모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한 사랑을 한번 못하고 죽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감정은 우주가 주는 선물은 아닐까?

나도 그 누군가를 진정 사랑했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구나!

 

잠시 잊고 있었다.. 한때 그 누군가를 이 영화처럼 가슴 저미게 사랑했고.. 여전히..

평소..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직 내게 있다는 것은 확신했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은 묘연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역시 내 마음 저편에 먼지를 고스란히 둘러쓰고 있었을 뿐이었구나!

 

.... 감성은 잠시 멀찍이 물리고 이성을 불러보자!

이 영화는 사랑 영화가 가져야 할 삼박자?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상 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자신들의 사랑을 다시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1박자! 사랑의 조심스런 발단, 시작 - 한번쯤.. 한 대상을 보며 맘 설렜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설레임을 기억하는가? 그 설레임을 표현하기엔.. 그저 상상을 한번 해보는 게 딱 제격이다. 

지금 이 시각! 창원대로 변을 거닐게 된다면 환하게 켜진 가로등 베일을 아스라이 둘러쓴 벚꽃들

의 폭죽아래를 오늘 처음 고백을 한, 그래서 서로의 두근대는 마음을 확인한 연인들이 거닐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보자.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어설픈 시작의 감정을 기억 속에서 확인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할 법한 그런 사랑의 조심스런 출발이 담겨 있다.

  

2박자, 사랑의 본격적 전개 ? 오늘 밤, 앞에서 소개한 두 연인은 벚나무 터널을 거닐 것이며 몽롱

한 감정에 취한 채, 시간을 초월한 채, 끝나지 않을 듯한 터널 속을 거닐다가 우연처럼 만나게 되

는 만류인력의 법칙에 의해 일순간, 두 사람의 손은 스치게 될 거고 남자는 심장을 쿵쿵 울리며

여자의 손을 향해 자신의 손을 미끄러지듯 뻗을 것이다. 그러면 둘의 머리 속은 정말 하얗게, 하얗

게 비워지는 것이다.

 

 

잠시, 둘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은 사라지고, 이윽고

오직 둘만이 간직하는 손가락 유희 그 어떤 섹스보다 짜릿한, 보드라운 손가락들의 유희!!

당신들은 이 영화에서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

른다. 아직은 조심스럽기만한 짜릿한 사랑의 전개..  

그리고 이성의 육체를 탐닉하는 끝없는 마음

 

3박자, 진정한 사랑이야기, 혹은 신파의 사랑이야기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 그런 사랑의 종말..

이별.. 그리고 긴 이별 후에 다시 확인하는 사랑.

예로부터 멋진 사랑이야기 라면 마지막의 이런 구조가 녹아 있게 마련이다.


, 이별을 통한 사랑의 재확인! 바로 요게 있어야

제법 삼박자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역사가 진행되고 이야기가 많아 질수록 대부분 작품들은 이런 사랑의 공식 중, 이별을 처

리하기가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이러한 결말은, 더 이상 진부하고.. 뻔하고 한결같다는 거다

그럼 이 영화 그해 여름은 어떠한가?

역시 여느 영화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르다!!

 

영화는 종반부에 치달을수록 나 같은 여린 사람을 가지고 논다..  

그것은 바로 절제라는 단어

이 한마디가 이 영화를 제법 진부하지만 훌륭한 이야기로 탄생하게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그해 여름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겠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앞서 말한 절제인 것이다.

이 영화는 끝까지 절제한다 그 절제는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행주 쥐어짜듯 감정을 터트리게 만드는 거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 그 두 번째는 바로 노스텔지아의 자극이다  

영화를 보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생각했고,

 

그 기억을 떠올리자 내 감정은 곧장 사오년 전, 그때 그 순간으로 시간을 초월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아직도 여전히 내게 머무르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 그 세 번째는 심각성을 탈피했다는 거다..

 

많은 이별의 구조적 장치를 지닌 사랑 영화들은 처음부터 그 이별의 무게를 싣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는 수채화처럼 가볍게 터치하듯 심각성을 보이지 않게 천천히 극을 이끌어 가고 있어 보

는 이의 감정을 서서히 물들이게 만든다.  

  

또한 주연 배우 뿐 아니라 조연들의 튀지않는 연기는 영화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있어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특히 주연 배우 이병헌과 수애의 연기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주연배우를 차태현, 손예진으로 캐스팅 했다면 어떠했을까?

 

(나는 지금 차태현 손예진의 연기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캐스팅의 적정함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서대문 구치소 앞에서 수애와 이병헌이 마주하는 씬은 두 사람 연기의 절정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계속 이 영화를 극찬만 한 것 같은데  흠 하나만 잡고 가련다.

 

마지막 회상 장면, 이병헌이 만어사를 찾아가서 그들 만의 돌을 놓아 두는 장면은

좀 억지스럽다는, 흐름을 방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감독으로써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이 장면을 놓치기는 싫었겠지만,

좀 아까운 장면이었겠지만 전체 흐름을 위해 과감하게 버리는 게 좋았을 성 싶다. 

돌을 놓는 이병헌을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수애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수애는 그 자리에서 이병헌을 향해 달려나가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며 집사람과 나는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군데군데 찍어 발랐더랬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나는 이 영화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은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 그러나 진실하고 정직했던 내 감각과 감수성을 일으켜 세워준 것에 대한

감사일 것이다.

 

새삼 이 영화를 통해 내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올 해 이렇게 까지 나를 무너뜨렸던 한국영화가 있었던가?

 

영화속의 대사로 마무리 하겠다.

편백나무 잎은 사람을 부르는 힘이 있다.

 

아니 이 영화에는 사랑을 불러오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