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땡-큐! 교보생명
Thank you, Thank you! 교보생명
교보생명이라는 직장에 승선하게 된지 횟수로 8년차,
입사하기 전의 28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 비해 교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8년을 내달린 시간은 광속처럼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직장을 잡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2000년 2월 14일, 설레고 야무진 마음으로 교보생명이라는 직장에 입사를 했었다.
교보생명에 최종합격을 하고 나서 부모님에게 교보생명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는 축하한다는 이야기 대신에 다분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창욱아, 너 거기 안가면 안되겠니?”
지금이야 아들놈이 다니는 교보생명이라는 회사를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시고, 좋아하지만 당시만 해도 생명보험회사에 대한 우리 부모님, 아니 우리 부모님 연령대의 대부분은 보험회사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이 말처럼 그닥 좋은 직장이라 여겨지는 곳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나는 내심 화가 났다. 그래도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입사를 한 내게 축하한다는 인사 한마디 정도는 돌아와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중에서 교보생명이라는 회사는 가장 좋은 곳으로 여겨 졌다.
그래서 나는
“그래! 좌우지간, 교보생명이라는 직장에 합격한 이상 일단 한번 열심히 해보자.”
열심히 일한다면 교보생명은 내게 꼬박꼬박 월급을 줄 것이고, 부모님으로부터 당당하게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교보생명이라는 곳에 무작정 승선하기로 결정했다.
계성원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는 동안 어머니의 우려는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이야기되는 것과는 달리 체계적이고 교보생명이라는 회사에 대해 점점 더 믿음이 생겨났다.
9박 10일 신입사원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자, 나 자신과 교보생명이라는 회사를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 속에 엔진이 서서히 폭발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엔진 폭발은 일선 점포에서 수습을 받는 기간동안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멈추어 버렸다. 그것은 계성원에서 교육 받은 것과 일선에서 하고 있는 점포경영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면서 3대 기본 지키기(자필서명, 청약서 부본전달, 약관 주요내용설명 및 전달)는 반드시 해야 하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가 부닥친 현실은 전혀 뜻밖이었다.
하긴, 당시 이런 문제가 교보생명이라는 회사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업계를 살펴보면 다른 보험회사도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선한 신입사원의 눈에 비친 회사의 모습은 크게 어긋나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아하! 이래서 보험회사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못한 것이구나!”
이런 부정의 마음을 지닌 채, 회사를 두어달 다니다 보니 교보생명에 대한 믿음과 내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내 이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준건 시쳇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창재 회장님’이었다.
2000년, 지금의 신창재 회장님이 취임하시고 4월이 되자 ‘변화와 혁신’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회사는 정말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회사의 변화는 거의 멈추기 일보 직전이었던 내 마음속 엔진에 다시 불씨를 당겼다.
여름 오후, 대나무 숲의 댓잎을 서걱거리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가는 듯 내 머리와 가슴은 청량하고 개운해졌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조직원들 각자가 느끼고 있던 회사에 대한 이미지와 대외 이미지를 서서히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변화의 바람은, 기존 업무에 대한 틀을 정도경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의 내공을 다져나갔다.
변화의 바람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변화 시키는 개기가 되었다.
FP 후보들을 리크루팅하기 위해 먼저 클릭(직무설명회)을 실시 하는 자리가 있다.
그 시간 가운데 나 자신을 후보자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나는 교보생명에 대한 느낌들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회사를 선택했을 때 어머니의 우려 섞인 말씀과 수습을 받으며 갈등 했던 마음과 그때 교보생명에 느꼈던 마음들, 그리고 2000년 4월, ‘변화와 혁신’ 이후의 달라진 점과 내 마음가짐의 변화 등을 이야기하고 나면,
현재 내가 교보에 대해 느끼고 있는 마음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저는 교보생명을 사랑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교보생명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계신 이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겠지요.(웃음)
만약 회사가 지금 당장 제게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저는 회사를 향해 큰절 한번을 하고 그간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하고 퇴직을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안 교보생명이 제게 베풀어 준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첫째, 교보생명은 가장으로써 당당하게 제 가족을 경제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게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제가 교보생명에게 감사할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회사가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월급봉투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교보생명을 사랑하고 감사한다고 말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보생명은 제게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니 만큼 직장생활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합니다. 또한 교보생명에 들어와 습득한 전문지식과 자격은 스스로를 한 걸음 한걸음 발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줍니다.
초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지만
초등학교와 대학에서 배웠던 것 보다 이곳 교보생명에서 배운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크게만 느껴집니다.
그전까지 배움이 단지 지식함양에 그쳤다면, 교보라는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배움은 사람과 사람을 통해 진정으로 느끼면서 배우는 것이기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때 교보생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고마운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까요?
또 만약 교보생명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어떤 한 대상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저는 이 회사를 세우신 신용호 창립자님께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교보생명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후보자를 앞에 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교보생명과 그 조직에 속한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한 조직원이 회사에 대해 스스럼 없이,
어떻게 보면 낯뜨거울지도 모를,
‘감사의 글’을
지금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교보생명이 가진 보이지 않는 진정한 힘이 아니겠는가?
자! 교보생명이라는 직장에 승선하게 된지 횟수로 8년차, 앞으로 언제 교보생명에서 하선할지는 모르겠지만 교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8년간 내달린 시간처럼 앞으로의 시간 또한 광속처럼 흘러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과 지금부터 주어진 시간은 분명,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직장을 잡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가 사랑스럽게 커 간다..
과거와 현재까지 교보생명을 아끼고 감사하며
앞으로도 이런 마음이 변치 않도록 교보생명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지도.지원해 줄 거라 확신한다.
모든 사람이 미래의 역경에 좌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10 동북아 타켓 시장 브랜드 선호도 1위를 위해,
조직원 모두, 밝게 웃으며 약진! 약진! 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