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함, 그 공허함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는 참으로 우리 인류가 지녀야 할 마음이지 않는가?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움트는 긍적의 씨앗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아니한가?
하지만 긍정의 마음과 막연함 기대는 참으로 극과 극인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떠한 일이 좋지 않게 풀리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래도 잘 될거야, 잘 될거야 라고 무사 태평인 사람이 있다면
이를 보고 참된 긍정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긍정의 마음은 현상에 대해 수동적이거나 피동적인 마음이 아니라
능동적이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도
늘 해결책을 내놓으려는 태도..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해결해내겠다는 의지에 서 비롯된,
그래서 스스로에게 잘 될거라고 문제는 풀릴 거라고 되뇌이는 태도는
참된 긍정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히... 잘 될 것 같다.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라
"잘 될 것 같다."라는 말속에는 책임이나 확신이나 긍정이나 믿음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까지나 가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정이란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저는 당신이 잘 될거라.. 저는 확신합니다." 라는 말 속에는 책임과 믿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마음의 근본에는 긍정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속에는
저는 확신합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등의 말은 여간해서는 듣기가 힘든 것이다.
이런 말을 쓰려면
그만큼의 믿음과 확신 그리고 책임을 지겠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들어 앉아 있는 것이다,
즉, 긍정의 마음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평소 쓰고 있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중에 ~~같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말끝을 명확하게 끝을 맺지 못하고 흐려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이런 류의 끝맺음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의 의식과 시각에 속에 막연함이 묻어 있음을 경계하라.
그 막연함은 얼마나 공허하단 말인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라는 말 속에는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기 싫다.
그래서 막연함과 공연함을 뿌리고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속내는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의 표출이지는 않을까?
어렵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지워보려고 하자..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책임을 긍정의 말을 하며 키워나가 보자.
어느순간,
당신은 긍정의 만인드가 장착되어 있을 것이다.
말은 씨앗이다...
말속에 씨가 있고, 말이 씨가 된다.
오늘 당신은 어떤 씨를 뿌리고 다닐 것인가?
막연함의 씨앗보다는 될수 있으면 확실하고 명확함의 씨를 뿌려보자..
말은 당신의 생각의 산출이고 생각은 당신이 보고 배워서 익혀진 가치관이니까...
말은 당신을 대변하는 아주 절대적인 부분이니까..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