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드러커 자서전
지은이: 피터 드러커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447P
그러나 우리 사회 전체는 프리트베르크나 대표했던 인식과 형이상학으로 움직이고 있다. 돈, 매매와 거래, 이자율, 국민총생산 같은 상징을 점점 더 실재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중세논리학자의 말처럼 상징은 실체가 있다고, 반면에 상징이 나타내는 대상은 이름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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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을 조직화함으로써 현실이 만들어지고, '미디어 이벤트'를 실행함으로써 역사가 만들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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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가장 순수하다." 현대인의 귀에는 아주 의아하게 들릴 말이지만 그 '영감님'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얘기한 것은 절대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는 가장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다. 구시대의 종교적 도덕주의자인 그가 돈을 버는 일, 즉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해가 되는 일을 가장 적게 한다는 말이었다. 수익사업을 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을 지배하거나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또한 축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상징에 만족하고 현실을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
그러나 존슨 박사가 이 말을 했을 당시에는, 돈의 상징이든 대중매체의 상징이든 간에 상징인(象徵人)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빵 굽는 사람과 구두 만드는 사람, 집주인과 판사, 귀족과 농민등 대다수는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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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징과 이미지를 궁극적으로 현실로, 사람과 사물을 허울로 여기는 극도의 최소한주의가 대다수의 인식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그것이 여전히 무구하고 무해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