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살아 있다고 느낄 때

난척 선생 2008. 4. 23. 11:30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낄 때가 언제냐구요?

그야, 늘 살아 있지요.

당연한 소리다.

우리는 늘 살아 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때는 언제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매순간 살아 있다는 느낌을 지닌 채 생을 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 있다는 그 짜릿한 느낌!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生生한 느낌을 가질때는 언제인가?

 

 

요즈음 내가 진정 살아 있다고 느낄 때는 이럴 때다.

 

첫째, 누군가가 정말 잘 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나눈 후 (혹은 조언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상대의 얼굴에서도 나와의 만남이 유익했음을 읽을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세상이나 혹은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존재라는 느낌... 

이것이 올바르다는 믿음이 있을 때...

단군이 말씀하신 홍익인간의 정신에 가까이 다가 서려할 때 스스로의 존재감에 무게가 실린다.  

 

둘째, 조깅 코스를 돌며 골인 지점인 학교 운동장이 가까와 질 때... 숨은 헐떡거리지만... 온몸에는 짜릿한 성취감이 느껴지고 힘겹게 운동장에 들어와 거친 숨을 고를 때...

나는 자신이 진정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수영이나 조깅같은 단순한 운동이 좋다.

수영과 조깅 모두 단순한 반복동작의 연속이다. 오로지 팔과 다리를 쉴새없이 움직이는데 집중을 하게 되고 다른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내 몸과 가장 가까와 질 수있는 방법으로 단순한 반복 운동만큼 좋은 건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또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지금처럼..

하나의 생각의 씨앗을 심고 아무렇게나 그 생각들을 풀어내고자.. 자판을 톡톡 두드리고 있을 때이다.   

 

최근 위의 세 가지 말고는 진정, 살아 있다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단순한 세가지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세가지의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 순간도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그럼, 반대로 존재나 자존이 허물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런 순간은 제법 많다.


상대와의 대화가 겉돌고, 상대는 나의 진심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스스로가 상대에 대한 진심이 없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주말을 엉망으로 보냈을 때,

특히 부부싸움이라도 한날이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텔레비전 앞에서 무념무상 발가벋겨진 채로 시간을 빼앗기고 있을 때,

또 이런 자신이 싫은데도 계속 리모컨 버튼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릴 때,

딱히 목적도 없이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적거릴 때..

당장 해야 되는 일을 미루고 있을 때,

 

바로 이런 때,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고.. 기껏 쌓아 놓은 존재감이 허물어짐을 느낀다.

 

더군다나...

나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자주 느끼고 싶기에... 즉, 욕심이 많아서...

원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되면 실망의 골도 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격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허나 상관말자..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일주일에 서너번 밖에 없을 지라도.. 아니 한번 밖에 맛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좋다...

그 불씨가 보이기만 한다면... 살려 낼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불씨를 본 것 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불씨가 활활 타오르게 된다고 믿고 있으니까.

 

 

자신에게 실망할 시간 보다는

사소한 것이더라도 스스로에게 칭찬할 시간에 집중하자.

인력의 법칙은 집중하는 것을 끌어 당기지 않던가...

 

그럼으로 오늘... 쓴,  이글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자... 

어쨌든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붙잡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헤헤.. 다행이다. 살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