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꽃
봄의 제전은 누가 뭐라 그래도 역시 4월이다.
노랑, 분홍, 연분홍, 그리고 화사한 흰색으로 치장한 개나리, 진달래, 벚꽃, 살구꽃, 복숭아 꽃, 조팝나무, 이팝나무의 꽃들은 찬란하게 화려하다.
그래서 시인 토머스 엘리엇은 그 역설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그러면 수려, 화려, 찬란함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4월을 뒤로한 지금의 5월은 어떠한가?
5월도 봄이 분명하건만... 요사이 5월은 따듯한 느낌보다 초여름 같이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5월도 봄이 분명하다면 5월을 대표하는 꽃들도 분명 산에 들에, 어느 집 정원 한켠에는 피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5월의 꽃들은 눈에 선명하게 띄지 않는다. 5월의 식물은 화려함으로 치장하지 않는다. 설령
화려함으로 치장을 했다 하더라도 언감생심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4월의 꽃들에 비교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식물들도 그걸 아는 것인지... 5월의 꽃들은 화려함으로 승부를 걸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5월은 수수하다. 5월의 꽃들은 그들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드러 내기보다는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은 후각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향기 또한 꽃처럼 은은한 향기로 사람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5월의 꽃은 향기로 승부를 건다.
그럼 5월의 대표적인 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5월이 수수한 시각과 은은한 향기를 발산함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향기로도 화려한 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장미...
화려하기로만 따지자면야 장미도 4월의 꽃들 못지 않다. 하지만 화려한 장미를 5월의 대표선수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나싶다.
기껏해야
어느 집 철담이나 임의로 조성된 화단에 철망에 기대어 선 채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장미는 5월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왠지... 모자람이 느껴진다.
그럼 5월의 대표선수는 누구를 꼽아야 될까?
바로 이 좋은 노래.. 과수원 길의 주인공이다.
같이 한번 불러 보자...
동구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나알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을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에 과수원 길~
과수원 길(화음)
서수남과 하청일.. 부름
개인적으로 이 아카시아를 5월의 대표선수로 내세우고 싶다.
우리의 산 중에,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나무의 꽃송이는 5월의 꽃답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슨 포도송이처럼 그저 흰색의 꽃을 여러 송이.. 주렁주렁 매달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굳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시선을 못박아 두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카시아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들의 후각마져 유혹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카시아 꽃이 피어있는 나무 아래나 그 주위를 지나게 될때면 아카시아 꽃 향기로 그것이 존재함을 확실히 깨닮게 되는 것이다.
아카시아 꽃 내음이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롯데 아카시아 껌을 한번 씹어보라. 그러면 향기가 어떤 지 금새 알게 될 것이다.
이 아카시아 꽃의 은은한 향기는 4월의 화려함과 맞먹는다. 아니, 어쩌면 비쥬얼한 것보다 더 큰 파워를 지니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또한 꽃 향기 뿐아니라 아카시아 꽃은 우리들에게 "벌꿀"이라는 달콤한 결과물을 선물해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 5월을 대표하는 꽃이 지닌 가치는 또렷해진다.
바로 요즈음이 이 아카시아 향기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시기다.
필자는 충농증이 때문에 늘 코가 반즈음 막혀 있어 냄새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들의 향기는 확실히 느낄 수가 있다. 운동장에서 집으로 귀가 하는 차안에서,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 놈들은 내 엉성한 후각을 잡아 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놈들의 호객행위가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아로마 효과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벌써부터 아카시아 향기가 사라진 6월 이후를.. 애써 걱정을 하면서
아카시아 껌을 사두었는지도 모른다. 헤헤
하지만 벌써부터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아카시아 꽃은 피어 있으니까 말이다.
5월을 대표하는 또 다른 꽃
앞서 5월은 향기로 승부를 건다고 말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5월의 꽃 모두가 향기를 지니고 있다면 좋겠지만...
좋은 것이 있으면 당연히 안좋은 것도 있는 법
아카시아 꽃잎이 흩날릴 무렵이면 서서히 향기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운 녀석들이 활동을 할 것이다.
바로 밤꽃!
물론 이 꽃도 다른 5월의 꽃들이 그렇듯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꽃은 향기보다는 냄새로 승부를 걸어오는 것이다.
밤꽃 냄새...아!
이쯤이면 당신도 물론 짐작을 하고 있을 것이 겠지만...
밤꽃내음은 남자의 정액 냄새와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이놈들의 냄새가 불쾌하고 불경스럽게 여겨진다.
뭔 말인고 하니..
감히 나무 주제에 사람의 생식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를 흉내내려 하다니... 고얀 것들...
식물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하는 것은 우리로 치자면 섹스를 하는 행위와 같다고 할때
어떻게 생각해보자면 요놈들의 냄새는 정말 오만불손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뾰족뾰족 가시같은 밤송이를 생각해보자면 고약하다는 생각이 더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요런 불손함에도
우리는 너그러이 용서를 줘야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가을 걷이를 하고 알밤을 까서 생으로 먹든, 삶아 먹든, 겨울이 되어 구워먹든, 아니면 빵에 �� 박아 놓고 먹든... 그래서 냄새가 고약하던, 밤송이를 까다가 손이 찔리던...
우리의 입은 이 고약한 냄새의 결과물인 밤알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막무가내로 결론을 내려보자.
5월을 대표하는 꽃들은 화려하진 않아도 분명 화려함에 버금가는 향기가 존재하고 그 꽃들의 결과에는
4월의 꽃들에게선 좀처럼 찾기 힘든 실속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초파일 연휴가 내일이다.
부처님 말씀을 쫓아 절로 가던, 산으로 들로 나들이를 가던 코를 킁킁거리며 5월의 향기를 맡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