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녁 조깅이 끝나는 종점은 집 앞에 위치한 인적이 뜸한 초등학교이다.
그래도 늘 한 두사람 쯤은 운동장을 돌고 있기에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다.
캄캄한 밤.. 아무도 없는 넒은 운동장.. 쥐죽은 듯 소리없이 운동장... 왠지 으스스 하다.
이런 차에 운동장을 돌고 있는 한두명의 사람들은 마치 캄캄한 시골마을 어귀에 켜진 가로등을 만나는 것과 같은 반가움과 따듯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운동장의 텅빈 밤을 불 밝히는 이들은 운동을 하러 나온 한두명의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학교 운동장 한켠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누군가 있다..
그들은 바로 중학생 정도 되 보이는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건물 뒤쪽이나 운동장 한귀퉁이에서 빨간 담배불을 빨아 당긴다.
나는 녀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 채지만...
나는 녀석들을 짐작하고 있지만... 내 코앞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넘어간다.
이렇게 모른 척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주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도
피어나기도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내말을 귀담아 녀석들도 아닌것 같기도 하고..
또 주제에 뭘 나서서 아이들을 개도 할만한 그릇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서뿌리 나서다가 괜실히 피덩어리들에게 모다구리(집단구타)라도 당하면 완전 망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녀석들과 만약 붙게 된다 그래도 5명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만용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그래도 모를 일이다.^^)
설사, 아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한다고 해서 이것 또한 자랑스러운 일은 분명 아니기에...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손해를 안보는 일 같아서 이다.
그런데 일주일 전,
딸 아이를 도움이 아줌마 댁에서 데리고 돌아오고 있는 저녁 7시 40분 경.. 아직 밤이 덜 익은 그 시각...
나는 보고 말았다.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너댓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느낌은 들었지만...내 시야를 뚜렷히 자극할 만한 일(담배를 피우는 일)은 없었기에 그냥 애써 무시하려던 찰라...
아차차... 나는 봐 버린 것이다. 한 아이가 담배를 피우고 당당하게 재를 탁탁 털고 있는 모습을,,,
아차차... 나는 어쩌자고 봐 버린 것이다.
이쯤에서 여러분들은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알 필요가 있다.
과거, 그러니까... 결혼하기전, 바야흐로 4-5년 전쯤이나.. 어쩌면 그 이전의 내 행동을 말이다.
나는 그런 녀석들(아무 거리낌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길가에서,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며.. 침을 찍찍 뱉어 대는 녀석들을 말한다. 그래도 뭔가 어른의 눈치를 보며 잘 못을 아는 놈들은 그런 녀석들에서는 제외된다.)에게 달려가 따끔하게 혼내주던 버릇이 었다..
인상을 뭣 같이 쓰며... 좋은 말로(말은 좋았지만 뉘앙스는 협박조로) 그들을 타일렀고, 그게 안될 때에는 쌍욕이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는, 적어도 내 눈앞에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른 이라면 적어도 옳은 일일꺼라 생각하며..
체면은 좀 구겼지만... 그래도 그것이 아주 잘한 일은 아니더라도 못한 일은
분명 아니라고 믿고 행동을 했다..
각설하고
그날, 그러니까 그 버릇 없는 녀석들을 봐버린 바로 그날,
과연 나는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아차차.. 옛 기억이 순간 폭발하려는 걸 스스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감정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스스로 이거 오늘 잘하면 일? 나는가 싶었다. 이걸 어떻게 할까?
그러나 감정의 기억은 이제는 희미해져 버렸는지
딱 거기까지였다..
예전의 기억이 더듬더듬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내
감정에 이끌리지 않고
오히려 이성에 의해 제압 당하는 것 아닌가?
4,5초를 뚫어져라 녀석들을 보다가 눈꼬리에 힘을 풀어내렸다.
내 이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딸 아이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앞장 세워
그 자리를 홀연히 벋어 났다.
그러면서 그날 내 행동은
잘한 일도 아니고 못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플러스,마이나스 시켜 제로를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결코 잘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연히 그 옛날 장난 삼아 초인종을 눌렀다가 나와 친구들을 아주 호되게 야단쳤던 그 사람을 떠올리며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옛날 우리들을 따끔하게 혼내주던 그 무섭던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의 잘못을 사사건건 들추어내던,
배운게 없어 보이긴 했지만 잘한 일이 분명한, 행동을 감정이 시키는데로 서슴없이 행하던,
그래서 야단치는 방식이 서툴렀던 그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닭장처럼 빼곡히 들어찬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어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세련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그래서 자기만의 성을 높이 쌓고 있는
그래서 아파트 입구조차도 찾기 힘들고, 호출을 해야만 입구 문이 스스르 열리는 성같은 집을 짓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못 배워서 좀 무식하고, 투박하고, 나오는데로.. 감정이 이끄는대로 살아왔던, 그래서 아이들에게 매를 들고, 아이들의 기를 죽이던, 남의 일에 감나라 대추나라 간섭하기 좋아하고, 이웃과 한바탕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이웃과 평생을 격없이 사귀던 그 시절 어른들에 비해
과연 더 발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많던 어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