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문장 읽기
한국의 글쟁이들
난척 선생
2008. 8. 29. 10:10
한국의 글쟁이들
지은이: 구본준
21P 정민선생이 말하는 글쓰기... 바로 '비움의 미학'
그는 스승 이종은 교수와 얽힌 에피소드를 먼저 들려주었다. 오래전, 정교수가 한 한시를 번역할 때 이야기였다. 번역하려는 문장은 "空山木落雨繡繡"라는 글귀였다. 정 교수는 이렇게 번역했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이 글을 본 이종은 교수는 정 교수에게 대뜸 "야,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라고 면박부터 줬다. 그리고 '空(빌 공)자를 손가락으로 짚더니 물었다. "여기 '텅'이 어디 있어?" 그리고는 정 교수의 해석에서 "텅"을 지웠다. 그 다음 이 교수는 번역문 속 "나뭇잎"에서 '나무'를 빼버리며 다시 물었다. "잎이 나무인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다음에는 "떨어지고"에서 다시 '떨어'까지 지웠다. "부슬부슬 내리고"에서는 '내리고'를 덜어냈다. 남은 문장은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정 교수는 오랜만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새삼 스승이 준 가름침을 곱씹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뒤로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정 교수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불필요한 것만 줄여도 글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제자에게 글쓰기 조언을 할 때 "글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30퍼센트 정도만 줄여보라"고 늘 말한다. 글쓰기는 전달력이 중요한데, 이 전달력은 문장을 줄일수록 늘어난다는 점이 그의 글쓰기 지론이자 글 잘 쓴다는 말을 듣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