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실존의 삼박자

난척 선생 2008. 11. 18. 15:50

 

 

 우리가 사는 한번 뿐인 유한한 인생..

이 유한성때문에 사람들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 한다.  

한번 뿐인...

 

오직 한번 뿐인, 우리네 인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구간으로 나뉘어 질수 있다.  

즉, 인생이란, 삶이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삼박자인 셈이다.  

 

 우리는 인생의 세구간 중, 과거나 혹은 현재, 미래의 어느 한 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노인들은 미래나 현재보다는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왔던 과거를 향기로운 추억을   

많은 젊은이들은 실존을 위협받는 현재보다는 불확실하지만 왠지 설래이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고...

또한 샤르트르나 보부아르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현재에 촛점을 맞추어 결국 실존 자체가 시지푸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허무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과거에 집착 

 여기, 지난 격동의 시절을 산 노인이 있다. 그는 70-80년대에 사업을 크게 해서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성공을 했지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큰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는 늙었고 지금의 노인이 되었다.  

그 노인이 맞이 하게 되는 현재는 바로 이런 것이다.

연탄을 때는 월세방 한칸, 한달에 폐휴지 줍기로 한달에 15만원 정도를 벌고, 정부에서 나오는 10만원 정도의 보조금으로 한달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또래 노인과 만나면 늘 이말을 달고 산다.

내가 왕년에~~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번이라고 또래 노인들은 그가 하는 소리가 이젠 영 못마땅하다.

그의 현재는 볼품없고 그에게 남은 미래는 얼마남지 않은 듯 하다.

그가 갈곳은 오직 화려했던 과거일 뿐이다. 

그가 머무르는 곳은 오직 허무한 '과거의 영광'

 

 실존의 현재

 현재에 집착을 하다보면 허무에 빠질 수 있다.

오로지 현재에만이 중요하다면 현실이 비참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유태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살을 택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비참한 현실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었다. 차라리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한 채 현재의 상태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와 미래가 무슨 소용이 있나는 결론을 내리게 된것이다.

도무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이런데 산다는 것은 무슨 소용있다는 것인가?

 

 젊은이가 꿈꾸는 불확실한 미래, 혹은 공상가의 현재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에겐 꿈이 있다. 그의 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수!

그는 노래도 곧 잘 부른다. 대학 내 가요제에서 최우수를 탄적도 있으니 가창력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 그는 누군가 그를 뒤받쳐 주면 금새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재작년 봄이었던가.. 이래저래 아는 연줄로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 간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오디션을 봤고 제작자로 부터 음성이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근데...

그 제작자가 돈이 좀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집은 가난하다. 또한 설령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가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이 일로 그는 낙담을 했다.

대학을 졸업을 했다. 동창들은 하나하나 직장을 찾아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직장을 구할 생각이 없다. 그는 가수가 되려하기 때문이다. 지난 밤이 새도록 텔레비전을 보았던 그는 오늘도 점심 무렵에 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는 현실에 좌절했고.. 그의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런 그도 하루 꼭 한번은 행복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잠이 들기 전에 하는 상상으로, 자신이 무대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팬의 환호성을 들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때다. 그 순간만이 하루 중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위의 내용은 결국, 인생의 삼박자 중 어느 한쪽에만 치중해서는 불안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마치 카메라 삼각대가 어느 한쪽의 다리가 없으면 넘어지게 되는 것 처럼. 

그러므로 송대관의 노래처럼 인생은 네박자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삼박자 중 어느 한쪽에만 치중하게 되는 것은

삶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될때 위태하고 불안하다. 바로 실존의 허무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기 시에는

그가 가진 과거로 부터 경험과 교훈을 얻어 내어야 하고

미래로부터는 낙관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영어의 낙관(optimism)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OPTIMUM에서 왔다고 한다. 이 말은 "최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미래를 낙관하기 위해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며 과거와 미래를 양쪽을 잘 가늠하며 미래를 향해 낙관적인 발걸음을 한발짝 한발짝 내딪으며 나아가야 하고... 때로 현실에서 허무한 느낌을 받을 때에는 과거의 경험을 땔감으로 삼아

삶의 불을 살라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