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문장 읽기

자본주의와 현대예술

난척 선생 2009. 2. 6. 14:23

  진 중 권 지음

 

 

145P 과학의 추격이 과연 자연을 잡을 수 있을까? 

 

어렸을 적에 우연히 들어간 대나무 숲은 푸른색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이 신비야말로 진짜 자연이다. 하지만 합리주의적 정신은 신비가 존재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그래서 그 비밀을 밝혀내 굳이 자연의 '아우라'를 깨뜨리려 한다. 아우라를 잃은 자연은 숨쉬기를 멈추고 한갓 양적 계량의 대상, 기술적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과학이 밝혀낸 것, 그게 자연의 전부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숲의 숨결을 느끼는 체험을 과학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자연은 정신이 아니다. 과학이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양적 측면일 뿐이다. 과학이 신비를 폭로해도, 자연의 질적 측면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고 비밀로 남는다. 자연의 정말 자연다운 부분은 과학의 추척을 따돌리고, 이성의 저편에서 끝내 정신의 '타자'로 남는다. 끝없이 달아나며 신비함을 보존하는 자연. 아도르노에 따르면 자연의 이 끝없는 탈주를 미메시스한 것이 바로 현대 예술이라고 한다.  

 

 

147P

 

예컨데 우리의 대학을 보라. 자본의 요구에 맞추어 시장의 원리가 대학에 도입되자, 학과들의 다양성이 급속히 사라졌버렸다. 이런 획일적인 틀 속에 관리된 인간들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의 비합리성이다.

 

 

149P 햔대예술이 난해하고 추한 이유

 

하지만 자본주의 문화산업은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 아무리 난해한 작품도 대중이 이해하는 코드로 번역해 상품으로 판매한다. 한때 충격을 주었던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작품도 오늘날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예술은 끝없이 자신을 혁신할 수밖에 없다. 자기를 상투적 코드 안에 가두려는 문화산업의 추적을 피해 끝없이 탈주하며,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이성의 타자로 남으려 한다. 자연을 전혀 닮지 않으면서도 현대예술은 이렇게 자연을 미메시스한다.

 

중략

 

현대 예술은 추하다. 왜 그래야 할까? 생각해보라. 과거의 예술가들은 자연을 모방하면서 그것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아름다운 가상'속에서 예술과 사회, 이상과 현실은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화해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거짓이 될것이다. 왜? 사회가 추할 대로 추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를 정직하게 증언하려면 현대 예술은 추해져야 한다.

 햔대 예술은 추상적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인간들의 관계 자체가 추상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사물의 질적 측면들을 사상하고, 거기서 교환가치의 양을 추상해낸다. 인간들 사이의 협력도 화폐라는 추상적 관계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 마지막 문장은 정말 냉철한 해석입니다. 한방에 들어옵니다.

확왜 현대 미술이 난해 하고 추상적인지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