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편을 보았다.
이 영화를 접하기 전까지는 이 감독이 가지는 힘의 실체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애매 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걸어도 걸어도"를 보고 나서 알았다. 이 감독이 지니고 있는 영화적 힘을..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객관적이며.. 참으로 섬세한 영화..
예전에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며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격정적인 감정없이도 보는 이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줄수 있는 것이구나!
일상이 주는 삶의 힘이 바로 이런거구나!
물론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일상을 아주 객관적이며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더이상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말기 암이라니... 어떻게 평범할 수가 있겠는가?
보통의 말기암 환자의 생애를 그리는 영화라면 우리는 암과 고군분투하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을 그려내면서.. 결국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오히려 이런 격정의 감정을 배제하고 아주 담담하게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관조적이며 담담하게.. 놀라울 정도로 관찰자적인 영화이다. 그리하여 이런 영화는 초반부에서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초반주의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은 고전소설을 끝까지 탐독했을 때 주어지는 그런 깊은 맛이 있다.
예를들면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벌, 혹은 허만 멜빌의 백경을 다 읽고났을 때의 맛이랄까? 뭔가 지루하고 평이한 느낌이 있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중반부를 지나가면서 부터 그 소설에 빠지게 하는 매력과 다 읽고 난 후의 자잘하지만 아주 아주 긴 감동과 여운을 주는 그런 느낌말이다.
이 영화 '걸어도 걸어도'가 바로 그랬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다 보고 난 후에도 격정은 일어나지 않지만,
잔잔하게 잔잔하게 여운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 무뚝뚝한 가족의 슴겨진 이야기(그렇다고 특별한 것은 아니고)와
가족이 겪어온 세월을 통해 한 가족 성원의 소통과 화해의 방식을 보여준다.
영화 걸어도..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라고 선동질하거나 추리소설처럼 작위적으로 꾸며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보여 줄 뿐이다.
그런데도 관객에게 작용하는 어렴풋한 힘은 크다.(물론 이런 영화를 보는 방식에 익숙한 관객들에 한정 지어지긴 하지만... 그러니까.. 이런 흐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음악이 흐르고, 영화의 자막이 올라가는 내내
나는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그러다 문득, 우리의 인생이 이 영화와 같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설핏 스쳐달아났다...
그리고 내 뇌리에는 예전에 들어서 익숙한,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위층에서 가지고와 틀어 달라고 했던(여기에도 사실 재미있는 사연이 숨어 있다), 레코드 판에서 흐르던 바로 그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아누이떼 모 아누이떼 모(步いても 步いても 걸어도 걸어도)의 구절이 뇌리에서 맴맴 도는 것이다.
# 이런 류의 영화를 어떠어떠하다라고 말하는 건 오히려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그저 영화처럼 관조적으로 담담하게.. 담담하게..
끝으로 원래 버전은 아니지만 <블루 아리트 요코하마> 감상!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