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문장 읽기

다른남자 - 길위의 남자 유성용

난척 선생 2014. 11. 7. 10:43

다른 남자 

     저자 백영옥 지음

 

 

<길위의 남자 유성룡>

 

124P

공간이 객관적으로 놓여진 상황들이라면 사건은 자기가 그 속에서 개입하는 거잖아요. 가령 내가 몇 시간씩 해외에서 버스를 타고 가고 있다, 그건 그냥 풍경이지 사건이 될 수 없어요. 근데 내가 어디 일단 내려서 우여곡절 속에 피해 갈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되는 것, 그게 사건이죠. 요즘 사람들이 사건을 만나기는 쉽지 않죠.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쳐놓잖아요. 각종 보험, 소셜포지션, 하나가 무너지면 두 번째가 막아야 되고,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증권이라도 막아야 되고, 어떻게든 안전장치가 있어요. 사실상 사건을 만날 수 없도록 철저히 노력하는 셈이에요. 불안감때문에 보호본능이 과하게 인플레이션된 것 같아요.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오랫동안 교육받아요. 하지만 정작 그것들만으로는 만날 수 없는 세상의 풍경들이 있다는 건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각별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 전형적인 패턴 속에 있어요.

 

 

137P

나이가 들어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건, 이미 살아온 삶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다. 어제와 내일이 비슷하고, 올해와 내년의 사랑이, 십년 후 친구와 가족들이 변치않으리란 빤한 예측들, 성공의 기쁨과 실패의 알아가는 나이가 되면, 앞으로의 시간들은 새롭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들로 '포개져' 버린다. 그러니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질밖에. 늘 가는 식당, 늘 가는 회사, 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언제나 포개지며 반복되니까. 낯선 길이 두렵고 처음 만나는 람과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익숙함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시간을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므로 미지의 길을 걷고, 나와는 다른 억양을 쓰는 타인을 만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