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아무도 모른다.

난척 선생 2015. 2. 24. 16:43

요 며칠 남쪽 따듯한 날씨는 곧 들이닥칠 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우울한 날의 연속이다.

밥벌이가 쉬 풀리지 않는 까닭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쏟아내 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직장동료도, 친구들도.. 그나마 아내가 대나무밭의 역할을 하긴 하지만 응석을 부리듯 다 쏟아낼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를 해줄 수 있다면....

 

애시당초, 누군가로부터 딱들어 맞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사정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한 사람의 심리적 디테일이나 그를 둘러싼 상황들, 그리고 불현듯 작용하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영역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당신을 이해한다'라는 단단한 위로의 말을 듣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지.... 그가 진실로 내 사정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 껏 기대지 말자.

사실 그의 사정은 당사자만이 알 뿐, 진실로 아무도 모를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에게서 전달된 '당신을 이해한다'는 이 말은

"어쩌면 당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로 고쳐 들어야 할 것이다.

마흔을 넘긴 지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고 해서 그에게 전적으로 기댈수 있을까?

아무리 가까운 이라도 내 미묘한 모든 것을 이해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테니까.

 

그리하여 나는 이럴 때, 기댈 직접적인 누군가를 찾기보다는

유튜브 동영상 강의나 에세이나 이웃 블로그나 SNS에 올려진 글들에서 위로를 발견하려 한다.

 

조금 전 '최갑수 작가'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글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이참에 그가 올린 글에 잠시 기대어 쉬어 본다.

 

"자네는 괜찮을 거야. 식사를 하고 나서 이를 닦는 것만 잊지 마.

그러면 자네한데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폴 오스터의 소설 <우연의 음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