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tomorrow is another day!

난척 선생 2015. 7. 20. 16:51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은 모든 것이 무너져버려 완전히 주저 앉아 버릴 것 같던 스칼렛 오하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래, 어쨌든,  내일은 또다른 날이야!" 라는 대사를 오버하며 날리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맞다. 스칼렛 오하라의 말처럼 

어쨌든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7월 15일, 오늘..

하루의 시작이 삐걱대더니 결국 퇴근시간까지도 마음 무거운 하루가 되고 만다.

화장실에서 잠시 호흡을 다듬는 중, 문득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자기 밖에 모르는 그녀가 종반부에서 믿었던 버틀러에게 마저 거부 당하자 금새 쓰러질 것처럼 보이던 그녀가 내뱉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체념과 그로부터 오는 약간의 희망을 담은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여러 분의 오늘 하루는 어떠했습니까?

좋은 하루? 혹은 나쁜 하루?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그럭저럭한 시간이었는지요?

 

역사적 평가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당대에는 별스럽지 않았거나, 아니면 좋은, 혹은 나쁜 평가를 받던 어떤 사건이나 인물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학자들에 의해 전혀 상반대는 의미로 뒤바뀔 때가 있는데

 

이는 개인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어서

특정시점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정반대로 뒤바뀌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때는 그 사람, 혹은 그 사건이 참 좋은 의미인 줄 알았는데...

정말 생각하기 조차 싫은 암담한 시절이었는데...

한참이 지나서 되집어 보면, 그게 아닌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이다.

좋은 직장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던가.. 참 좋은 사람인줄 알고 친했는데 결국 그에게 된통 사기를 당했다던가.. 아니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직장이 없어, 쬐그만 핫도그 가게를 차렸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큰 부를 일궈냈다는 등등의 스토리가 그러하다.

 

내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한참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전혀 다른 의미와 평가를 내리게 되는 사건이 있다.

 

원인을 97년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에서 끌어오더라도 상관없겠지만...

그보다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졸업을 앞둔 1998년, 대학 4학년이던 내 삶은 무거운 시절과 발맞추어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고 암울하게 저무는 듯했다.    

 

그해 여름 방학,

경영학 전공이었지만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내 인생의 항로를 수정하고 싶었다.

이제 막 꿈을 쫒는 젊은이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막상 뭔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작을 해보자니, 

스스로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해본 적 별로없는 나로써는 그저 막연하고 아득하기만 하여 속 답답한 나날들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IMF사태라는 큰 쓰나미가 대한민국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어른어른거리기만 할 뿐 희미하고 옅게 피어오르는 꿈조각에 다가서려는 청년에게 있어 이런 어둠의 무게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말이 대학생이었지, 전공이나 취업을 위한 공부는 뒷 전이고, 전공과는 엉뚱한 방향을 선택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미적미적거리다가 3학년 겨울방학부터는 그야말로 놀고 먹는 백수에 더 가까운 시절이 불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백수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백수란... 다음 날 아침 깨어났을 때... 별다르게 할 일이 없는 사람을 일컷는 단어다.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밥을 짓는 일도, 학교에 등교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자격증이나 공무원 시험 따위의 준비를 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철저이 백수인 상태였다.

 

방학이었으니 공부를 하러 도서관이나 학원에 가지 않는다면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태였고... 또한 내가 원했던 꿈이 학원이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러니까 나는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할 일이 없는 백수"였다.  

그러니 굳이 일찍 일어나거나 내일을 위해 어서 잠을 청해야 하는 보통의 삶에서는 멀찍이 비켜나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취침시간은 새벽 2시 이후였고, 그러다보니 기상시간은 아침 9시를 넘기게 되고 잠자는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면서 기상시간도 뒤로 밀려 계절이 여름으로 다가서자,  급기야.... 아침 8시에 잠을 자고.. 오후 4시를 넘겨서 일어나는 올빼미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여러 분은 7월의 중순의 오후 4시의 풍광을 아시는지요.. 

저는 아직도 그 여름의 풍광을 기우는 햇살과 소리로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오후 4시의 느슨한 햇살과 그 햇살에 비친 어둑한 책상, 라디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던 책,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이불과 배게  

그리고 열린 내방 창문으로 들려오는 삼삼오오 교정을 빠져나오는 초등학생들의 경쾌한 소리는 밝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고,

백수의 쫄은 새가슴을 뾰족하게 파고드는 벽시계 초침의 째깍거리는 소리는 강박증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한 것이 었습니다.

 

그해 여름 그런 날들이 몇 주 동안 이어졌던 것 같았는데..

어느 날에는 문득 '도대체 이게 뭔가'하는 서글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할 일없는 백수는 오후 4시를 넘겨서 설익은 잠을 힘겹게 깬다. 백수는 이제 목적없는 하루를 힘없이 시작하려 하는데... 

여름해는 이미 비슴듬히 걸려있고,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몰려가고,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서서히 퇴근을 염두해 두게 되는 그런 상반된 여름의 오후 4시!  

이런 오후 4시의 서글픈 현실을 떠올리자, 나는 삶에 대해 미어지도록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 

고등학교 입시에서 보기 좋게 떨어지고 난 후부터는 항상 남들보다 뒤쳐지고 말았다는 열패의식,

앞으로 남은 인생도 깊히를 짐작조차 할수 없는 벼랑 끝에 서있는 것처럼 아득하기만 할 것 같은.. 무력감..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될 것 같지만... 계속해서 탈출구를 찾지 못할 것 같은,

스스로에게 그런 부정적인 예감을 좀처럼 떨칠 수가 없었던 불안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둡던 시간은 어쨌든 지나가기 마련이어서

그로부터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엉겁결에 직장에 올라 타게 되고, 다시 10년이 흘러, 대리로, 과장으로 착착 진급하게 된 후,

한창 에너지를 쏟고 있던, 햇살이 기울던 어느 여름의 오후 즈음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 그 여름, 비참하게만 느껴던 백수시절 오후 4시, 그 느슨하기만 했던 여름 햇살 한줄기가 그립다!! 

홀로 쓸쓸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다시 한번쯤 돌아가고픈 아련한 그리움으로, 포근한 핑크빛 낭만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식구들의 눈치를 보며 벌레처럼 숨죽여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밤새 듣고,

퀭한 눈이 되어 온밤을 봐도봐도 볼 것 많던 텔레비전,

심각하게 소설을 읽고, 진지하게 영화를 보고 울고 웃던,

오직 그 나이에서만 볼 수 있을 감수성 넘치는 글을 끄적거리던,

그리하여 내방 창문으로 푸르스름하게 새벽이 겉히는 광경을 묵도하던 암울하고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98년 그 언저리 나날들이...

이제는 그 의미가 "낭만"으로 돌변하여, 한번 쯤은 그 시절을 찾아 가고픈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아련한 동심의 마법같은 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   

 

지나고 보면 지금의 의미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음을,

무겁고 암울했던 시간이 인생여정에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기쁨이 가득했던 영원할 것같은 나날들이, 고개를 틀어 깊은 슬픔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음을..

 

언젠가 모든 일은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 채, 비비안 리의 과장된 대사처럼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