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취미의 권유 - 집중과 긴장과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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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긴장은 완전히 다르다. 긴장할 떄는 집중하지 못한다. 물리적인 긴장이든 정신적인 긴장이든 마찬가지이다.
예를들어 축구에서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맞은 공격수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골대 앞에서 공을 잡은 특급골잡이라면
쓸데없이 몸에 힘이 들어가서 굳어지는 일이 없다. 어깨나 머리의 움직임이 뻣뻣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골 문 앞에서 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부드럽게 이완되어 있다. 바로 이런 풀어짐이야 말로 공과 골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다.
말론 블랜도,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알파치노와 같은 탁월한 배우들이 연기 수업을 한 액터스 스튜디오( The Actors Studio)의 기본 교육 방식 중 하나가 '이완'과 '집중'이다. 긴장은 가정 표현을 방해 한다. 액터스 스튜디오의 위대한 지도자 리스트라스버그는 입중에 관해 다음과 같이 아주 중요한 지적을 했다.
"극정인 상황의 인물을 연기할 때 배우는 스스로 극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자각해야만 한다."
예컨대 망연자실한 상태의 인물을 연기할 때 배우는 스스로 망연자실해지는 게 아니라 '망연자실한 안간이라면 이럴 떄 어떨게 할까.'라는 분명한 자각 속에서 연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이완이 필요하며, 더구나 상황을 자각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다. 나는 집중해서 소설을 스고 나면 충만감과 성취감, 그리고 정신의 안식을 얻는다. 소설을 마친 뒤에는 휴양지를 찾아서 푹 쉬고 싶다거나 긴장에서 벗어나 풀어짐을 맛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휴양지로 달려가는 것은 소설 집필 말고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이다. 긴장을 풀고 중중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실제 일에서 온오프의 구별이 없다. 온 힘을 다하여 맡은 일을 타협없이 끝내겠다는 욕구는 있을지언정 얼른 대충 마치고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는다. "충실하게 일을 하려면 일에서 벗어나 심신을 풀어주는 오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건 무능한 비지닛 맨을 겨냥하여 상업주의가 퍼뜨리는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