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기생충

난척 선생 2019. 6. 24. 15:08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다듬지 못한 초벌입니다>

기생충을 보았다.

이전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플란더스의 개, 괴물, 옥자가 그렇듯 사회 계층과 계급간의 풍자와 비유를 군데군데 꼽아 넣고, 비틀줄 알았는데...그게 아니었다. '설국열차'처럼 계급과 계층에 대한 주제의식이 강하고 또렷한 영화였다.

물론, 계층간의 인물의 대결구도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어쩌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계층이 나누어지고 또한 자연스러운 대립 또는 공생의 관계로 보였다.

 

다만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코드는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어서 지금까지 감독의 작품중 가장 힘있고 날이 바짝 서있는 영화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주제의식은 묵직하게 영화전반부를 지배하고는 있으되, 

감독 특유의 풍자와 유머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맛깔나게 양념이 되어 있어서 거부반응없이 자연스럽게 영화를 흡수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고도의 계산된 장치가가 더 대단하게 여겨지고, 진정한 고수의 요리를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마디로, 맛도 좋고 건강에도 아주 유익한 그런 요리가 내 앞에 차려진 기분이었다. 그 다음 수순은 뻔하지 않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없이 숟가락과 젓가락질을 해대고 있는 거다. 


그 결과, 영화는 시종일관 재미있고,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부터  종반으로 흘러갈때 즈음이면 관객의 조마조마한 마음은 멈출 틈을 주지 않고

이 영화 '기생충'에 찰싹 들러 붙들어 매어지게 되는 거다. 마치 관객들이 이 영화의 기생충이 된 것처럼.


영화의 주제의식은 중반부의 몇 장면에서 또렷해 진다.

그것은 전가정부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부터 급물살을 타고 영화를 관통해 흐른다.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이 백수에서 박사장 부부에게 기생하게 된 시작점은 우연한 기회-기우(최우식)의 친구의 중산층의 영어과외 선생 역할을 물려받으면서 부터-였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 가족은 이제 거짓말을 넘어 기존의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몰아내는 악날하고 비열한 방법을 쓰게 된다. 그렇면서도 기택의 가족들은 두사람의 처지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보다는 더 좋을 것이라 단정짓게 된다.       

하지만 전가정부의 방문으로 그들이 꿰찬 자리는 그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인물, 아니 그들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뺏고 올라선 것을 알게 된다.(기택과 똑같이 대만카스라를 차렸다가 망하고, 이보다 더한 상황은 사채업자에게 쫒기되는 극단적 상황)

이런 상황들은 상하계급의 경쟁이 아닌 하층계급간의 경쟁은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는 면에있어 더욱 절박하고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들끼리 처참하게 서로를 밟고 올라서려하는 개싸움의 그 순간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박사장 가족의 갑작스런 컴백홈이 시작되면서 부터 모든 것은 또렷해진다.

그들끼리의 피 터지는 생존을 위한 개싸움은 주인의 아들을 위한 캠핑이 폭우으로 망친 채, 엉망인 기분으로 복귀하자 집을 지키던 개들의 흔적은 순식간에 흔적없이 정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박사장의 집의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기택가족은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을 우산도 없이 맨발로 윗동네에서 끝없이 끝없이 자신들이 기거하고 있는 아랫동네로 떠밀리듯 내려 온다.(이는 잠시 꿈처럼 상류층 생활에 취해 있던 기택의 가족이 번쩍하고 꿈에서 깨어나 원래 있던 자리인 저아래반지하로 순식간에 떨어지는 상징적인 묘사다) 

그러나 물은 윗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고 그들이 잠시 잊고있던 반지하는 위에서 부터 모여 흘러온 빗물로 넘쳐나고 심지어 하수구에서 쏟아져나온 똥물로 가득차 아수라장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폭우가 그들의 여가 생활인 가족캠핑을 망치고 좋지 않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지만..

어떤 누군가에게 폭우는 한순간에 집을 잃고 학교에서 강제 캠핑을 당해야 하는 끔찍한 일인 것이다.

그런 어쩔수 없는 강제 캠핑을 당한 이후에도 기택의 가족은 주인인 박사장의 부름에 어쩔수 없이 응해야 하는 처지,


박사장은 그들의 가족에게 고용이된 신분들이 천박하지는 않고 세련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박사장이 정한 경계를 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순간 경계를 침범하는 말이 터져 나오자 기택을 향해 계급의 경계를 확인 시켜준다. 

가정부의 남편은 박사장에게 감사하고 충성하는 인물

애걸하던 가정부도 입장이 바뀌자 바로 기택의 가족을 밟고 올라서며 지배하려 한다.(손들고 무릎을 꿇고 있게 한다)

지하실 냄새는 그들의 상황이 나아졌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상층으로 올라서는 것이 쉽지 않음을 나타냄 -- 냄새는 좀처럼 더 위로 나아질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

또한 기택이 칼로 박사장을 찌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냄새라는 떨쳐버릴수 없는 한계를 직면하고 더이상 일정계급을 넘어설 방법이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장면은 기우의 상상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나타냄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반지하 양말을 보여주며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기우

기정

충숙 이름을 잘살며보면 기생충이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