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대하여
어린시절,(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시절부터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가기 전 까지를 말한다.)
나는 점심 도시락이건, 집 반찬으로 나오건 간에 김치와 된장은 모조리 싫어 했다.
내 또래라면 모두 짐작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상에 김치류와 된장이 없다면, 지금보다 먹는 재미가 상당히 줄어들 것은 분명하고,
인생에서 소소한 행복 하나가 쑥 하고 빠져나가 버리게 될 것이 뻔하다.
매년 10월에서 11월이면 부산에 위치하고 있는 회사 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다.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검진을 받고 나면, 부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O에게로 가는 수순을 밟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종합검진을 받은 김에 치과검진까지 받으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핑계로 잠시 O 얼굴 한번 보자는 수작이라면, 수작인 것이다.
보통 의사라고 하면 거북살스럽기 마련인데, 더군다나 치과의사라고 하면 내과의사를 대하는 것보다는 좀 더 무섭지 않은가? 하지만 친구가 치과의사라 편안한 것을 넘어 만만하기도 하고, O는 지금껏 비용을 청구한 적이 없어서, 나로써는 매년 이 날은 더할나위 없이 이상적인 과정이 펼쳐지는 하루라고 할 수 있겠다. 종합검진 받으러 간 차에 치과검진 받고, 예전처럼 자주 얼굴 보지 못하는 O와 마주하고, 걱정없이,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O의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치과용 의자에 누워 구차한 내 입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것이다.
O는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치과의사일 뿐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데 정말 심장 전문의나 뇌졸중 따위를 다루는 신경 전문의 친구를 둔다면 더 안심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이런 의사들을 친구로 두는 것보다야 일생을 두고 이들을 만날일 없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올해도 역시 O가 운영하는 치과에 들러 스켈링을 받고 O가 말하는 진료결과를 귀담아 들었다.
다행히 특별한 추가 치료없이 진료가 끝나고, 언제나 그랬듯 병원 한켠에 있는 원장실로 들어가 서로 밀린 잡담을 나누었다.
중간중간 O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원장실을 들락날락 거렸고, 이 또한 해마다 익숙하게 보아오던 광경이라 어색하지 않았다.
12시 30분이되자, 또한 매해 그랬듯이 우리는 점심을 먹으로 나왔다.
점심메뉴는 매번 O가 추천을 했는데... 이번에 추천해준 식당 세 곳, 모두 이전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해마다 여기에 오긴 왔구나, 녀석이 추천하는 메뉴중에 이제 안 먹어본 것이 없으니..."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O는 요즘 몇가지 사적인 고민을 털어 놓았고, 나는 가만히 듣다가 몇 마디 거들었다.
나도 뻔한 신변잡기를 주섬주섬 털어 놓았다.
쬐금의 예의는 갖추었으나 꺼리낌은 없었고, 젠체는 있었으나 가식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O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 두루 아는 친구였고, 나 또한 그에 대해 다르지 않았다.
앞에서 아무리 잘난 척을 해대더라도, 그는 이미 나를 알고 있을 것이고,
내 꾸밈과 가식은 그에게 훤히 비추어 지리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그를 마주하고서도 가끔은 꾸밈과 잘난 척이 제법 편할 때가 있다는 거다. 그것은 아마 너무도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일께다. 그게 자연스럽게 편한 거다. 그도, 나도 서로 감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좋았다.
감추거나, 혹은 감추지 않거나, 모두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시말해, 조금 꾸미든 그렇지 않든, 젠체를 하건 아니던, 모두 상관이 없는 사이인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잘난 척이나 떼를 쓰거나 유치한 장난을 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가끔 그런 순간이 온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지만, 아무튼 모든 것을 전부 내려 놓는 순간이 오게 되는 때가 있다.
유치하게 서로 고집을 피우고, 논쟁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등의 마치 100분 토론에서 정치논객과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서로 비추어 내기도 한다.
이런 순간이 오면, 친구들의 얼굴에서 삼십 년 전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사춘기 소년들이 얼핏설핏 묻어 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세월이 제법 들어차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새 것 보다는 점점 더 익숙한 것이 좋아지는 듯하다.
손에 익은 익숙한 만년필, 익숙한 운동화,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동네, 익숙한 커피숍, 익숙한 회사, 익숙한 김치와 된장찌개
누군가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권장하기도 하고, 또 인생의 끝에서는 모두 이별해야만 할 것이 분명하지만, 어쩔수 없이 이제는 익숙한 것에 이끌리는 나이가 되고야 말았다.
여전히 익숙한 벗인 그와 나는, 지난 여러 세월을 두고 분명 서서히 변해왔다.
처음 그 시작의 간극은 아주 미미했지만, 서로 다른 1도의 각도는 세월을 타고흘러 이제 45도 정도로 벌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와 나'는 어릴시절부터 오래도록 서로를 지켜보았던 '우리'임이 틀림없다.
이제는 제법 알 것 같다.
그와 나와의 관계, 그리니까 우리 사이를,
친구라 부른다는 것을.
2시가 가까워지자, 올해가 가기 전에 또한번 얼굴을 마주하기로 하고는
O는 병원으로, 나는 창원으로 각자의 삶의 방향으로 각도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