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나는 누구인가? (부제 : 괜찮다)

난척 선생 2019. 12. 11. 17:25

 나는 누구인가?

뭐.. 꽤나 불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질문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식상한 질문인 것도 같다. 

그래서 도대체 뭐? 무엇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거창한 질문을 던졌단 말인가?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 더 이상 질문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답으로 넘어 가보자.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 하면..


 올해로 만 46세의 남자, 키 180cm, 몸무게 71kg, 신발 싸이즈 265cm, 옷 허리둘레 32인치, 국적 대한민국, 사는 곳 경상남도 창원시 거주,

요즈들어서야 겨우 나와 같이 살아 줄만하다고 이야기하는 한 여자의 16년째 남편,

아이들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내 아이만큼은 본능적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내심 그럴듯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옆동네 거주하시는 부모님의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효자도 아닌 아들, 장인장모님의 그럭저럭 사위, 대구 거주하는 소방관 동생의 데면데면한 형, 착한 처제와 동갑내기 맘좋은 동서에겐 싫지는 않을, 나름 가까운 형부와 형님일 것이고,

오랜 친구들 7명 중, 약간 독특하기도한 그저그런 한 녀석이 아닐까?

직장에서는 자기 회사를 참 좋아하는 20년 경력의 열정있는 차장.. 

주말 아침이면 빙상장이나 수영장으로 달려가 직원들과 회원들에게 눈인사 정도 겨우 주고받는, 창원시설관리공단을 애용하는, 뭐 나름 나쁘지 않는 정직한 시민,

주말 오후, 집 앞 커피숍에 들러 텀블러와 쿠폰을 내밀면, 알아서 아메리카노 원샷으로 연하게 만들어 주는 4년 당골 고객.

이외에도 내가 누군인지 말해주는 사회적 관계는 조금 더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말하기로 하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너는 어떤 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물어보자면.. 

부끄럽긴 하지만, 스스로는 제법 순수하고 나름 괜찮은 녀석이라 말할 것이고, 급한 성격, 욱하는 성격, 미루지 않는 성격, 불의를 보면 참기도 하고 가끔 참지 못하기도 하는, 그저그렇기도, 때로는 그럴듯한 인간으로 정의될 것 같다.

또한 돈벌이를 말하자면, 20년 전, 지금의 직장에 취업을 하고 부터는 여태까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고..

좋아하는 것을 말하자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이렇게 주말이면 커피숍에서 글쓰기를 하고, 운동을 삶에 필수과목이라고 생각하고, 늘 세상의 또 다른 곳을 동경하는 그리하여 그럴싸한 여행을 꿈꾸는 욕심 많은 인간..

아참, 좋아하는 것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좋은 영화와 잘 쓴 TV 드라마에는 아주 흥분하는 인간..

또 20년 전만해도 옷은 걸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15년 전부터는 패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복식법(服式法)에 대한 책을 네댓권 읽은, 자칭 옷 잘 입고 싶은, 타인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녀석.. 

너무도 중요한 먹는 것에 관해서라면, 주말이면 국수와 멸치쌈밥, 우동, 뼈다귀해장국, 코다리찜, 돼지국밥, 충무김밥, 설렁탕, 가정식 식당 등등의 당골 맛집을 아내와 함께 찾아가는 제법 입맛 까다로운 인간.

술이라면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매일 한 캔정도의 맥주를 즐기고, 주말이면 운동 후 막걸리와 닭발에 가끔 입맛이 당기고, 한달에 한번쯤은 9000원에서 15000원 사이의 칠레산 와인정도는 즐길 줄 아는 그런, 좀 있어 보이고 싶은 인간.

독주는 별로 좋아 하진 않지만... 중국집에 가서 요리를 시켰다면 응당 고량주인 공부가주 다섯잔 정도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한마디로 말해, 나라는 인간은... 어쩌면 자기가 바라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린시절은 잘 몰랐지만...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운도 나쁘지는 않아서

가장 좋은 인연을 아내와 지금 직장 그리고 두 아이를 만난 일이라 여기고 있고,

의리가 제법있는 것이 분명한 오랜 친구들이 내곁에 남아 있는 것도 행운이라면 큰 행운이라 하겠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파고들자면 더 많겠지만 이쯤 해두자..

어쩌다보니 나라는 인간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게 되었지만,

내 이야기를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보통 두 달에 한권 정도 물리학나 우주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것인데..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은 과학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싹들이 더 잘 자라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빅뱅으로 부터 출발해 지금도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나이는 대략 137억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감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지금부터 정확한 숫자로 표기하자면, 13,700,000,000년이다. 이것도 와 닿지 않을 갓 같으니, 우리가 사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와 비교해보기로 하자.

지구의 나이는 대략 4,500,000,000년(45억년)이고, 지구상에 유인원인 오스트랄로 피데쿠스의 등장이 3,000,000년에서 2,000,000년 전 사이,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시점이 약 200,000년 전~15,000년 전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흔히 농경사회의 시작과 빗살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 시대가 5,000년 전쯤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최초의 국가 하(夏)나라가 4,000 전쯤이니까... 우주의 나이는 인류의 신석기로 부터의 역사보다 약 3,425,000배가 많다는 뜻이 된다.

간단하게 말해 우주의 나이는 우리의 상상 밖의 시간과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엔 우주의 크기는 어떠한가?

이를 설명하자면 더 당황스럽게 된다. 왜냐하면 우주의 크기는 앞서 말한 긴 숫자와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아서 빛의 속도를 불러와야 하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를 줄여서 광속이라고 말하고, 이 속도는 1초당 300,000Km를 이동함으로 역시 광속이라는 자체가 감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래서 지구의 둘레인 40,120km를 빛의 속도로 달려 간다면 1초에 일곱바퀴 반을 돌수 있는 속도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지무지 빠른 빛이 1년동안 이동하는 것을 일컬어 1광년이라고 부르고 1광년으로 가게 된다면 1년에 우리는 9,500,000,000,000(9.5조)km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와우!! 와우!!

자, 이제 빛의 속도로 지구를 벋어나보자.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50,000,000(1억 5천만)km 이니까.. 광속으로 달린다면 8분 정도면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어라, 8분 별거 아니네... 하지만 초당 30만km를 달려가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까지의 거리가 가까울때는 4,459,000,000(44억5천9백)km, 멀때는 4,536,000,000(45억3천6백)km 정도로 광속으로 달린다면 뭐, 걱정할 것 없다. 약 4시간이면 주파하니까... 별거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광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말이다.


 자, 이제 태양계를 벋어 나보자. 우리와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센타우리 항성계까지의 거리는 광속이라면 4.2년정도가 걸린다. 이제 더이상 정확한 숫자표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너무너무 길어지니까...

4.2년 별거 아닌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천체는 퀘이사라고 알려진 밝게 빛나는 곳인데 여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곳까지의 거리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이곳으로 부터 빛이 도달하는데 까지의 시간은.. 그러니까 빛의 속도로 자그마치 110억년, 어쩔 수 없이 완전한 숫자로 다시 표기해보자.. 그러니까 읽기도 곤란한 11,000,000,000년이 넘게 걸리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말이다.그러니 우주의 크기를 함부로 꺼내어 들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과학자들이 예측한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으로 추청하고 있고, 지금도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을 하고 있으니까... 와우!! 와우!!


 그 크기와 기원을 알 수 없어 생각해보면 두렵기까지 한, 시커먼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더 작은 존재가 바로 나, 정창욱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2019년을 살아내고 있는 46년 먹은 남자인 것이다.

내가 현재 위치 한 곳은 집 앞의 당골 커피숍,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어마무시한 크기의 우주 속, 좌표조차 찍지 못할 어딘지도 모를 공간, 지구라는 어느 변두리 촌구석중의 촌구석에 앉아 글을 쓰며 겨우 이렇게나마 존재의 불을 깜빡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몇주 전, TV에서 창녕에서 1500년 전 가야고분이 도굴되지 않은 채 유물과 시신이 온전히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1500년전의 석관 뚜껑이 열리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가만히 생각해보니, 1500년이 엄청난 시간인 듯하지만 우주라는 시간에 비추어 보자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처럼 느껴지는 게 아닌가?

마치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한 개그맨이 과장된 몸짓으로 크게 외쳐대던 대사가 오버랩되었다.

 "우리 연변에서는 그까짓 것은 무덤 축에 들지도 못 합니다. 우리 연변에서는 적어도 한 만년은 되어야 이거이 겨우 풀 좀 자란 무덤이겠구나, 합니다." 


 그리고 입가에 엷은 미소가 돌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희미하게 나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광활한 우주 속 어딘가에서, 보잘 것 없는, 아주 미미한, 어쩌면 조금이라도 이 우주에 영향을 끼지지 못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

그저 존재 자체로써 존재할 뿐인.


 그런데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구... 6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도, 5000만 인구의 대한민국도, 내 좋은 직장도, 그간 모아둔 약간의 재산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신이 속한 이 우주 속에서 결국 떠밀리듯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태양계를 넘어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날아간 보이저 1호처럼 마치 끝을 알수 없는 우주의 시간 속에 모두 떠내려갈 것이라고...

그러니 일찍이 서정주 시인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 서정주 <내리는 눈발속에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