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노래방

난척 선생 2019. 12. 14. 17:07

 지난 주말, 친구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올해는 특이하게도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두어 시간이 지나자 술, 친구, 음악, 연말, 이런 키워드 덕분에 분위기는 부쩍 무르익었고,

이후 우리 일행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래방 간판 중 눈에 들어온 곳이 '팝콘 노래방'이었는데..

약간의 취기가 오른 우리들 중 누군가가 상호가 '팝콘 노래방이니 분명 서비스로 팝콘이 나올 것이다 라고 히죽거리며 이야기하자,

누군가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팝콘 노래방에서 만약 팝콘이 나온다면 그 옆에 있는 '루비 노래방'에 가면 루비를 준다는 말인가? 그러니 이건 말이 안된다. 정말 간판처럼 팝콘이 팍하고 튀어 나올리 없다고' 제법 그럴듯한 맞대응을 했는데... 결국 노래방에서는 팝콘과 유사한 강냉이가 서비스로 나오자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서비스에 우리는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깔금하고 분위기있는 조명이 켜지고, 천정에 달린 미러볼이 돌아가며 오렌지, 초록, 빨강의 동그란 빛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졌다. 베이스와 에코가 조금 높게 섞인 채로 반주가 울려퍼졌다. 신해철, 함중아, 서태지와 아이들, 한영애, 이문세 등등이 등장했다가 사라졌고..

우리들은 템버린과 박수를 치며, 아는 노래는 대부분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때로는 절규하며 불렀고, 때로는 어줍잖은 화음을 넣기도 했고, 어떤 곡은 자연스럽게 듀엣으로 흘러가기도 했으며, 또 어떤 곡은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듣고만 있기도 했다.

누군가는 동영상을 남겼고, 누군가는 도취되었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진정 흐뭇해졌다. 

오로지 녀석들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노래방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들어서는 노래방을 찾는 일이 기껏해야 일년에 두세번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가 10대와 20대였던 때는 지금과 달리, 모임에서 빼놓지 않고 거쳐야할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노래방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처음 노래방이란 곳에 발을 들여 놓던 때가..

노래방이라는 용어조차 낯선 그때, 마찬가지로 지금의 친구들 중 누군가의 한명의 손에 이끌려 갔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이야 노래방을 시간제로 운영하는 곳이 많지만 그때는 모두 천원 짜리 지폐를 100원짜리 동전으로 교환하여 작은 바구니에 담고 한곡당 300원을 넣고 불렀었다. (요즘에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때처럼 동전을 넣고 부르는 코인 노래방들이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어쨋든,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래방이라는 공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위치가 시내 중심가나 변두리 지역이든 상관없이 아직도 여전히 그 존재의 위상이 사라지지 않는 곳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좀처럼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 '노래방'이라는 이름은 분명 추억의 장소임이 확실하다.

아직도 우리는 이곳 노래방에서 '우리들만의'그 시절을 소환해낸다.

그러면 이문세, 신해철, 김광석, 조하문, 이상은, 윤상, 이승철, 부활 등이 내 기억에서 생생하게 복원되어 귓가에 울려퍼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걸어왔던 그 시절의 한곡한곡을 들추어 부르고 있노라면,

우리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함께'이고,

그 하나하나의 얼굴에서 어린시절, 내가 알던 바로 그 박현욱, 원대희, 윤영근, 신지헌, 오민규, 윤재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술기운와 더불어 몹시도 나는 흐뭇해지고 마는 것이다.

바로 이 노래방이라는 갇힌 공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