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을 기억하다
카를로 로벨리가 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을 읽다가 문득 먼 기억 한줄기가 떠올랐다.
그게... 내가 제대하고 다음 해였으니까. 1996년의 여름이었다.
따져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이십오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앞선 문장에서 '1995년의 여름'이었다로 썼다가 친구 O가 글을 읽더니 95년에는 자기는 아직 군 복무 중이었다고 하는 바람에 1996년으로 수정을 한다. 더 웃픈 현실은 위에서 언급한 책에 줄을 그어가며 재미있게 읽은 뒤 책장에 꽂으려 했을 때 같은 책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읽는 내내 책 내용은 새로웠고 도무지 전에 읽었다는 기억은 나지 않았다. 따져보니 책을 읽은 지 고작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고백하자면 이런 일들을 겪는 것이 최근 들어 처음은 아니었다. 어떤 기억을 송두리째 상실한다거나 이미 보았던 영화나 책을 보면서도 두 번째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결국 생뚱맞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정말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억들은 아무렇게나 사라지고, 왜곡되고 변질되면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현상은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이 분명해서 많은 경우 중년을 넘어서면 타인에게 보다 너그러워지고 또 스스로 겸손해지고, 예전에 비해 여러모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게 되는 것이다. 이는 체력과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에 기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 이제 다시 첫 문단으로 다시 돌아가자.
그게... 내가 제대하고 다음 해였으니까. 1996년의 여름이었다.
따져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이십오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제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펄펄 끓어 넘치던 나는 친구 녀석 O와 함께 지리산 등산계획을 짜고 있었다.
어떤 코스로 선택할지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O와 나는 결국 칠선계곡으로 오르기로 의기투합했다.
요즘도 마찬가지인 듯 하지만 당시에도 칠선계곡은 국립공원 보호 차원에서 5년 간의 휴지기를 두고 있었는데 때마침 휴지기가 풀리면서 탐방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지리산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어 보니, 지리산을 소개하는 책마다 여러 등산코스 중 칠선계곡을 으뜸으로 치켜세우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고 있어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탐방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이에 두말없이 칠선계곡 코스로 결정한 뒤, O와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계곡을 끼고 지리산을 오를 생각에 마냥 들떠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싱글싱글거렸다.
그로부터 꼭 일주일 뒤 O와 나는 버스를 타고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칠선계곡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산행을 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계곡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 다음 날 지리산을 오르기로 했다.
늦은 점심을 라면으로 간단히 해결한 뒤 가지고 간 텐트를 펼쳐 놓고는 한참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겨우 완성되었을 무렵에는 해가 제법 기울어 시간은 오후 4시경이 되었다. 더운 여름날 텐트를 치느라 꽤나 고생을 한 우리는 후다닥 수영복으로 갈아입고서 차가운 계곡물로 들어가 물장난을 치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온종일 햇볕을 받아 뜨듯해진 바위 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자 어느새 해는 산등성을 넘어가고 있었고 맑은 계곡 물속으로 늦은 오후의 느슨한 햇살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저녁을 분주하게 준비하는 동안 계곡으로 슬며시 어둠이 내려앉더니 이내 멀리 보이는 민가의 불빛 몇 개만이 희미하게 아른거릴 뿐, 사위는 마치 암실처럼 온통 새까만 암흑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곧 내 시야는 까만 어둠만이 가득했고, 귀에는 온통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 흘러넘치고 있었다.
배낭에서 손전등과 렌턴을 찾아 불을 켰다. 미약하지만 텐트 주위가 새초롬하게 밝아졌다.
어둑신한 가운데 더듬더듬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갑갑한 미래나 각자의 꿈에 대해 한참 동안 주절거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문득, O가 자기가 다니고 있던 단학선원(단월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평소 기(氣)에 대해 궁금했던 내가 관심을 보이자 O는 선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단전호흡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분간 심취하여 기에 대해 떠들던 O가 마침내 바위 위에 털썩 앉아 자세를 잡더니 운기심공(運氣心功 : 나중에 단학에 관련된 책 두 권을 읽고 이 용어를 알게 되었는데 가부좌나 반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손바닥에 기를 모아 몸으로 느끼면서 운행하는 것을 칭한다)을 펼치기 시작했다. O는 반가부좌를 틀고서 양손바닥을 가슴 앞에서 서로 마주하게 한 후 20센티 정도 거리를 두고 힘을 뺀 채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가부좌로 앉아 있던 O의 손과 팔이 마치 홍콩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부드럽고 신비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O가 하는 행동을 보며 중국 무협영화 흉내라도 내는가 싶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O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고 미심쩍어 보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꽤 심오한 느낌마저 들어 근엄한 표정의 O를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차츰 우스꽝스러운 이지미가 걷히더니 마침내 O는 정말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신비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O에게 말했다.
"야, 지금 뭐 하는 건데? 뭐, 내공수련 같은 거가? ..... 근데, 팔은 왜 그렇게 막 움직이고 그러는데?"
약간의 경이감과 상당한 의구심을 띈 내 물음에 O는 자세를 바로 잡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잠시 침묵으로 뜸을 들이던 O는 다정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이런저런 단학수련의 과정과 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 자세를 취하고서 양손바닥에 가만히 집중하고 있으면 기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기라는 것이 양손바닥 사이에서 마치 스펀지를 누르는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탄력 있게 느껴지는데, 이 기라는 것은 우리 몸에도 있고, 이런 자연에도 있으며, 우주에는 이런 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고 하면서 너도 한번 자세를 잡고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곳이 지리산이라 그런지, 기감(氣感)이 매우 좋다고 말하면서 반가부좌로 어정쩡하게 앉아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모으고 있는 내 자세를 바로 잡아주면서 이야기했다.
"눈을 감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양손바닥 안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에 집중을 해 봐. 운이 좋다면 당장 기를 느낄 수도 있어."
나는 도대체 뭐가 느껴진다는 말인지, 반신반의하면서도 기라는 것을 꼭 한번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O가 시키는 데로 눈을 감은 채 양손바닥 마주하고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했다.
사위가 적막한 가운데 계곡 물소리만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칠선계곡의 짙은 어둠 속에 파묻혀 애써 눈을 감고 있으니 시간은 굼뜨고 지루하게 흘러갔다. 또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는 지리멸렬하게 뇌리를 파고들어 가뜩이나 익숙지 않은 명상을 방해했다.
그렇게 5분가량이 지났을까. 분명 내 두 팔에는 아무런 힘을 주지 않고, 그 어떤 의지도 없이 그저 가만히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을 뿐인데 느닷없이 손바닥 사이의 공간이 스르르 벌어지더니 마치 같은 극의 자석을 마주대고 있을 때처럼 뭉근하게 밀어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몇 분이 더 흘렀을까. 뭔가에 이끌리듯 마주한 양손 간격이 어깨넓이보다 더 넓게 벌어지더니 급기야 두 팔이 몸통 주변을 크게 원을 그리듯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매우 놀랍고 두려운 마음이 되어 '이게 도대체 뭐지, 혹시라도 귀신같은 것이 내 안에 들어와 이렇게 양팔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는 생각이 들어 더럭 겁이 났다. 당장 눈을 뜨고 사지(四肢)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행여라도 어떤 섬뜩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뜨는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O에게 물었다.
"O야, 지금 내 팔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어... 이게 뭐고? 설마 이게 네가 이야기하는 기(氣)라는 거가?"
내 물음에 O가 다소 놀란 듯 그렇다고 대답했고 나는 그제야 두려운 마음을 황급히 떨쳐낼 수 있었다.
O는 달뜬 목소리로 기의 실체를 느끼려면 보통 일주일 정도 수련을 해야만 느낄 수 있는데, 여기가 지리산 자락이라 주변 기운이 좋은 탓인지, 내가 기감이 좋은 탓인지 몰라도 하루 만에 느끼는 건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느껴지는 기운을 양손 사이를 좁히면서 지긋이 안으로 모아 봐라. 그러면 스펀지처럼 폭신폭신한 느낌의 기를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O가 시키는 대로 벌어진 손바닥을 슬며시 좁혀 보았다. 과연 O의 말처럼 손 안에서 말랑한 탄력감이 전해졌고 마치 양손에 둥그런 풍선이나 스펀지를 가볍게 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1996년의 그날 그 순간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신세계를 맛보았다.
그러니까 생을 통틀어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꿈 속이나 상상으로만 존립했던 그런 판타지한 세계가 바로 내 손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예전에 한동안 밤을 새워 읽었던 김용의 소설에서나 보았던 경공, 탄지신공, 구음진경, 태극권과 같은 단어들과 홍콩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동굴 속에서 결가부좌로 앉아 심오한 얼굴로 하던 내공수련, 긴 옷자락을 퍼덕이며 높은 지붕 사이를 나는 듯 펼쳐지던 경공, 장풍으로 상대를 손쉽게 튕겨 내던 그런 장면 등이 마구잡이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는 기(氣)라는 실체가 지금 내 손바닥 안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몹시도 흥분했고, 놀랐고, 한편으로는 감동하기까지 했다.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되돌아보아도 그날 그 순간에 펼쳐졌던 그 기분은 이렇게 글로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살면서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그런 충격적인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날 밤, 나는 수차례 오호! 오호!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O로부터 기나 단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 지리산을 올랐고,
나는 어제와는 또 다른, 경이로운 실제 세상을 눈앞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칠선계곡은 그야말로 숨겨진 비경임에 틀림없었다.
칠선계곡을 따라 오르는 내내 O와 나는 마치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생생히 본 듯, 해적들의 숨겨진 어머어마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칠선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어젯밤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탄사인 우와! 혹은 이야! 를 쉴 새 없이 내뱉으며 올라갔고, 계곡이 끝나는 마폭포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두 다리가 몹시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게 힘들게 정상을 향해 돌진했다. 거의 탈진할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천왕봉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지리산이 주는 시원한 풍경에 서로 감탄했고, 둘 다 난생처음으로 지리산 정상을 딛고 있음에 환호하고 있을 때, 1916m 천왕봉 정상에 올라선 채 조금은 교만해진 우리를 꾸짖기라도 하듯 별안간 구름들이 잔뜩 몰려들더니 찬 소나기를 매섭게 쏟아냈다. 옷은 금세 흠뻑 젖었고 비옷 대신해 준비해 간 비닐을 아무렇게나 둘러쓴 채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리산을 다녀온 후, 그날 밤 손 안에서 느꼈던 기(氣)라는 것에 대한 흥분이 미처 가시지 않은 채, 나는 행여라도 그날 느꼈던 기가, 마주한 양손바닥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기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며칠간 계속해서 반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명상이나 호흡을 하면서 따듯하고 폭신한 기를 직접 확인했었다. 뿐만 아니라 단학선원에서 나온 기 수련 책 두 권을 직접 구입하고는 자주 책에 나오는 운기심공을 따라 해 보았고, 그 뒤로도 틈틈이 반가부좌를 하고 운기(運氣)를 했었다.
그런데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그날 그 특별했던 순간을 다시 되짚어 보면
기라는 것의 실체를 느꼈던 그 신비로운 경험은 내 인생을 크게 뒤바꿔 놓지도, 인생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그날 이후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행동 따위가 달라진 것은 딱히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단지 그 순간만이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을 뿐, 또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아득하게 짐작하던 것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기쁨의 순간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내 기억 속에서 샛별처럼 또렷하게 반짝이고 있는 하나의 특별한 사건일 따름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날의 그 사건이 내 인생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니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 일이 내 생에 꼭 큰 의미를 지닌, 혹은 상당한 영향을 끼친 가치 있는 일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예전 내 모습을 돌아보면 내 앞에 놓인 삶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라 기를 쓰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꼭 어떠한 일들이 상당한 의미나 가치를 지녀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오히려 어쩌다 내게 주어진 생을 그저 소처럼 묵묵히 살아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삶 전반에 걸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이는 그날 그 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서 여전히 경이롭고도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했던 찰나의 영롱함으로 반짝거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돌아보면 그 신비롭고 놀라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고 내 삶의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 기(氣)라는 것의 실체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신비한 것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기라는 실체가 단지 무협지에나 등장하는 판타지에 불과하건, 만물을 이루는 음양오행의 실체이건, 과학적으로 보아 전자기장이 되었든, 더 나아가 양자역학의 영역에 있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다만 그때 그 순간의 경이롭고 신비한 기억과
지금도 두 손을 가볍게 벌리고 그 공간에 집중을 하면 여전히 따듯하고 뭉근한 기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져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게 되는 것일 뿐.
그리고 O와 내가 서로 공유하고 있을
그날의 기억 한 자락 만으로도 그 시간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기억이라는 것이 거친 세월 속에 뭉텅이로 사라지든, 훼손되고 왜곡되어 변질되든
상관없이 기억은 당신의 역사이고, 그것은 당신의 시간이고...
결국 당신의 시간은 과거의 기억과 앞으로 기억하게 될 당신의 미래이다.
그리고 그런 사건의 기억들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든, 미미하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게 될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다른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간은 당신이고
당신은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총합일 따름일 뿐
그리고 노래하자.
내가 아는 당신은
나의 기억이고
당신이 아는 나는
당신의 기억일 뿐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
기억은 추억이 된다.*
* 밑줄 부분은 적재의 노래 제목에서 차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