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최근 들어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그럭저럭'이다.
그럭저럭.
이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보면 그 안에 있던 어슴푸레한 뜻이나 느낌 같은 것들이 뇌리에서 잠시 맴돌다 가라앉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단어가 제법 그럴싸하면서도 적잖이 위안 같은 걸 준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 그럭저럭한 삶, 그럭저럭한 사람, 그럭저럭한 음식...
다음(Daum) 어학사전에는 그럭저럭의 뜻이 '큰 문제나 잘된 일이 없이 그런대로'라는 의미라고 나와있다.
크게 잘된 일도 없지만 딱히 별다른 문제도 없는 상태. 그러니까 최소한 나쁘지는 않다는 말이니, 때론 팍팍한 삶에 있어 꽤 위안이 되는 단어임에 분명하다. 나로 말하자면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해 애써 걱정하며 준비하려 노력하는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다.
다만 그날그날 맞닥뜨릴 상황에 대해 그때그때 생각하며, 어떻게 보면 조금은 즉흥적으로 그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편인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대한 얼개 정도라면 몰라도 디테일한 사건까지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만약 어렵사리 예측을 했다고 해도 우연처럼 내 앞에서 펼쳐질 일들은 딱히 피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앞당겨 신경 쓰는 것이 괜한 시간이나 에너지 낭비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그냥저냥 살아내다 보면 내일 역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럭저럭'한 날들이 될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는, 내 앞으로 펼쳐질 날들 역시 '그럭저럭' 잘 될 거라는, 막연하지만 제법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에 대한 이런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곗날에 모처럼 외출한 부모님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혹시 큰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하고 더럭 겁이 날 때도. 잠결에 술에 취한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와 가슴이 조마조마해질 때도.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해 빌빌대던 백수시절에도.
걱정이 마음 저편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할 때면 그 순간의 간절한 바람을 무작정 머릿속에 밀어 넣고는,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억지 다짐을 했었다.
내 안의 불안을 그대로 놔둔다면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만 같았다. 하여 내 앞에 놓인 걱정과 불안들은 아무 탈없이 지나갈 거라고 애써 믿어 버리고는, 뻗어가는 걱정과 불안의 가지들을 냉큼 잘라버렸다. 그러면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고, 걱정하던 일들은 대체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리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당면한 일을 차근차근 해내다 보면 결국엔 걱정하던 일들은 '그럭저럭' 해결이 되고, 또 특별하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두자.
이런 사고의 습관 덕분에 '퇴직'에 관해서도 그동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따금 사내에서 명퇴나 희망퇴직이라는 말들이 떠돌아도, 그 문제는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될 일이라고, 다 잘 될 거라고 여기며 더 이상의 생각을 차단해 버렸다. 하지만 올 들어서부터 이런 심경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동기들이나 한 두해 차이나는 선배들과 만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임금 피크제(이하 임피로 줄여서 씀)나 명예퇴직, 정년연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비롯한 또래 동료들은 만 55세가 되는 임피까지 짧으면 이 년, 길어야 고작 사오 년 정도를 남겨 두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레 퇴직이나 임피 등으로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동안 임피나 퇴직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오갈 때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도 되는 냥 태연하게 흘려듣곤 했다. 하지만 요사이 내 안에서 뭔가 불안한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 년 뒤 만 55세가 되어 임피 대상이 되면 순차적인 임금삭감이나 조기퇴직을 선택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게 단순한 양자택일의 결정사항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임피가 들어가면 임금 삭감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건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미 임피에 들어간 선배들의 경우를 보면 이게 결코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임피에 들어가면 보통 연고가 없는 원거리 발령이 나게 되고, 적응하기 쉽지 않은 직무가 주어진다거나, 마땅히 주도적인 업무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사실 이런 외적인 근무조건의 변화는 꽤 힘들긴 하지만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면 그래도 견딜만하다고 한다. 오히려 이런 외적 변화보다 여태껏 차장, 부장, 팀장 등의 그럴싸한 직함으로 불리며 회사에서 나름 존재감을 펼쳤던 사람들이 그간의 권위나 체면 따위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겪게 되는데, 여기서 오는 '내적 쪽팔림' 혹은 '자존감의 추락' 등이 되려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선배들 대부분은 이런 내적 쪽팔림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래선지 만 55세가 되면 임피에 들어가기보다는 그냥 명예롭게(더 이상 쪽팔리지 않게) 조퇴(조기퇴직)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올해 들면서부터 마음속에 엉겨 붙기 시작하는 걱정은 것이 바로 이런 지점에 있었다. 만 55세가 되고 임피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아직 대학생일 텐데... 그땐 어떻게 하지. 특별한 기술도 없는데 갑작스레 퇴직이라도 하게 되다면 뭘 해 먹고살지. 노인이라기엔 아직 이른 나이인데, 뭐라도 해야 하겠고, 게다가 나이에 걸맞은 적당한 타이틀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그냥 백수로 지낸다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등.
아마도 오십 대의 일반적인 회사원(공무원이나 준공무원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이라면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걱정일 것이다. 좌우지간 오 년 뒤엔,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될 불안요소들이 안개처럼 피었다가 사라지곤 할 때마다 걱정은 조금씩 쌓여 갔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딱히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불안을 무작정 지워버렸다. 그렇다고 불안요소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불안은 저편에서 안개처럼 피어올랐지만 더 이상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안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차츰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에.
*임금피크제 : 워크셰어링(work sharing) 형태의 일종으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연령에 이른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즉, 일정 근속연수가 되어 임금이 피크에 다다른 이후에는 다시 일정 퍼센트(%)씩 감소하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하는 것
일찍이 제자 계로가 공자에게 귀신과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아직 살아있는 사람과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귀신과 죽음에 대해 어찌 알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季路問事鬼神 子曰未能事人 焉能事鬼 曰敢問死 曰未知生焉知死 논어 선진 편 11장
공자님의 이 명쾌한 대답을 살짝 바꿔 보면 다음과 같이 들려온다.
이보게, 하물며 내일 일어날 일도 잘 모르는데, 오 년 뒤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죽음이나 귀신, 명퇴, 임피 따위의 쓸데없는 걱정일랑 그만 접어두게. 그보다는 오늘 하루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얼마 전, 천안에 있는 인재개발 교육원에서 삼일을 보내고 왔다. 삼일 동안의 교육기간 중에는 평상시 업무로부터 벗어나 있어선지 자연스레 마음에 여유가 생겨났다. 저녁을 먹은 뒤 숙실에 누워서 내가 맞이하게 될 퇴직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서툴지만 나름의 정리를 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별다른 대책이나 해결책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생각의 정리를 통해 임피나 퇴직을 떠올리며 불안했던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는 것에, 하루하루를 살아내다가 때가 되면 그때 가서 대책을 세워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다시 돌아왔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날의 생각들을 한번 적어 본다. 매소드 연기를 펼친 뛰어난 배우는 영화나 드라마가 종영된 후 극 중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다시 본래의 자기을 찾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꽤나 필요하다고 한다.(몇몇 배우는 이를 위해 심리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냐며 만만하게만 볼일은 아니다.) 만약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심리적인 문제를 겪게 되는데, 이는 그가 맡은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정기간 동안 맡은 특정한 역할을 자꾸만 본래의 자신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는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시점에 접어든 직장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직위와 권위나 그 업무를 모두 내려놓고 나와야 본래의 자기로 돌아갈 수 있는데, 퇴직 후에도 여전히 부장이나 팀장 역할에 집착하거나 그 역할에서 벋어나지 못한다면, 참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것이 분명하다. 회사에서는 부장 팀장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한다고 하더라도 집에 와서는 아빠의 역할을, 친구들에게는 친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며, 만약 어떤 동호인 모임에 등록하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다면 초심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팀장 부장을 연기하려 든다면, 이는 상당한 부조화이고, 그의 연기는 엉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간 부장 팀장의 연기를 멋지게 잘했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 그가 속한 집단에서 엉뚱한 연기를 펼친다면 그는 빵점짜리 배우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결국 그는 속한 집단에서 자의든 타의든 방출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이제, 그는 더 이상 권위로 가득 찬 부장이 아니며 후배로부터 깍듯한 대접받는 선배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생의 후반전을 앞둔 사람들은 소속집단(직장, 가정, 단체, 모임)에서의 역할을 내려놓을 준비를 서서히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 대신 본연의 모습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퇴직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떠올려본 내 모습은 비록 얼기설기하고 흐릿했지만 대략의 얼개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생각한 대로, 꿈꾸는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긍정의 회로를 돌려보는 것은 불안에 휩싸인 채 걱정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퇴직 후 인생을 막연하게나마 그려 보았다.
매일 두세 시간 정도는 글을 쓰자. 가능하다면 책 한 두권 정도는 내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해 보자.
경제를 공부를 계속하고 주식투자를 꾸준히 해서 짭짤한 수익을 올려보자. 그래서 현금 십억 정도는 자산운용을 해보자.
지금처럼 홈트레이닝을 매일하고 주말엔 수영을 하자. 가끔 자연을 느끼며 등산을 하자.
일흔이 되기 전까지 매년 세계의 버킷리스트 장소로 여행을 떠나자.
매일 집 앞 도서관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평소 읽고 싶었던 두꺼운 책들을 신나게 하지만 여유롭게 읽어보자.
하루 한 시간 정도 커피나 차와 함께 음악을 듣는 시간을 가지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아이처럼 웃어보자. 이때 술은 주로 내가 사도록 하자.
위의 계획들은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것들이다.
다만 이번에 하나를 더 추가했는데 이게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그건 바로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익하고 재미있는 강의를 하며 사회에 뭔가 도움을 주는 삶을 꼭 살자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날 밤 머릿속에는 스무 살 무렵의 불안으로 가득했던 내 모습이 잠시 오버랩되었다.
좀처럼 이루기 힘들 것 같은 꿈을, 희망을, 밤마다 밝혀보고자 애쓰던 스무 살 무렵의 가난한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때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것이 정말 오래되어 새삼 이런 기분이 든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사실 뾰족함은 없었고 그저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상상만으로도 어느새 앞 날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은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 대신 희망, 자신감, 꿈, 도전 등과 같이 이십 대에 자주 쓰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떠돌았다. 늘 불안과 두려움인 채였지만 막연한 꿈과 희망만으로도 한껏 부풀어 올랐던 스무 살 청년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듯했다.
비록 앞은 막막하지만 아무렇게나 저돌적으로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의 열망 같은 것이 잠시동안 이입되고 있었다. 그날 밤, 이런 느낌을 감지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한갓 꿈이라고 해도 좋았고, 잠시동안이라도 좋았다.
그것 만으로도 불안은 충분히 멀어졌다. 더불어 불안과 희망이 혼재된, 투박하고 서툴지만 패기 있던 예전의 내 모습을 다시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가슴 저 너머로부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찬란하게 밀려들었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뭐라도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더 이상 걱정하지 말자.
다 잘 될 거야. 그럭저럭.
*아내가 이 글을 읽고 피드백을 했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서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여 거슬린다고 했다.
적어도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이라고 하면 후반부는 좀 실망감이 든다고 했다.
가만히 듣고 보니 정확한 지적이었다. 타인을 향한 글이라면... 적어도 불편한 느낌을 독자에게 주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크게 공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글을 그렇게 고친다면 상당히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글이 될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당히 부끄러운 채로 그대로 놓아둔다. 아직은 한참 멀었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