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쓰기

기억은 사라지고

난척 선생 2024. 7. 23. 16:43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으로 늙어 갈수록 뇌세포가 감소하고 노화해서 그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해가 거듭될수록 대부분의 신체기능과 회복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이다.
까놓고 말해, 그냥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이병헌 주연의 영화 '싱글라이더'를 보았다. 
영화는 나름 재미게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의 종반부가 흐르고 있을 무렵, 거실을 지나치던 아내가 반전 결말에 대해 스포일 해버렸다.
 
"뭐! 그렇다고? 근데, 그걸 미리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 
내가 이렇게 따져 묻자, 아내는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봤던 거야."
"무슨 소리야. 완전 처음 보는 거구먼."
"아닐걸, 이거 예전에 나랑 봤는데...." 
"무슨, 아무리 내 기억력이 떨어졌어도 그렇지...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이 정도 지나면 어렴풋하게나마 느낌이 오거든.
근데, 이 영화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들어. 그러니까 이건 분명히 안 봤어."
이렇게 말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에서 블로그 계정을 열었다.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대부분 짧게라도 블로그에 기록을 해두는 편이라 설마설마하며 검색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6년 전, 그러니까 2018년에 4월에 이 영화를 보고 남긴 평이 있는 게 아닌가.    
그제서야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아주 흐릿하게 피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6년 전, 블로그에 남겼던 이 영화의 평은 딱 한 줄이었다.
"잘 나가다가... 쌩~ 뚱 맞죠?" 
이건 악평이었다. 
음, 아닌데… 지금까지는 나름 볼만 한데.
 
영화는 결말을 향해 흘러갔지만 펼쳐지는 장면들은 모두 낯설기 만했다.
끝부분의 반전이 살짝 거슬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정도는 아니어서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6년 전에 적었던 것처럼 그렇게까지 생뚱맞거나 어이없는 반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났다.

다시 보니(전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볼만했다. 
과거에 겪었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기억이 송두리째 휘발되었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쩌다 보니 기억을 온전하게 믿을 수가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구나.
그러니 예전의 기억이나 느낌을 가지고 함부로 단정 짓지는 말자. 기억은 더 이상 온전하지 않고, 과거의 느낌마저 지금은 다를 수 있으니까.’

중년이 된 지금, 적어도 예전보다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위안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냥 내키는 대로 단정 지어버리고는 고집과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아님 말고.

결국 생이 종국에 다다르게 되면
기억도, 에너지도, 마침내 육신마저도 휘발되어 사라지겠구나.
모든 생의 결말이, 어쩌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라면 ‘살아간다’는 것과 ’어떻게‘가 남은 숙제가 될 것이다.
결말은 같지만 그 과정은 모두가 다른,
각자의 생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리라.

문득, 내 나이가
쉰 하나인지, 쉰둘인지, 쉰셋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