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아보니 억지로 힘을 줘서 되는 일들은 드물더군요.
이삼십 대에 읽은 자기 계발서들은 하나같이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메시지가 강했습니다.
당시엔 그런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책에서 나오는 대로 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고, 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삶에 힘이 꽉 들어 찬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젊은 나이였다는 말이겠지요.)
뭐, 그렇다고 그런 책들이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그 시절엔 적지 않은 도움이 됐고, 힘든 직장생활을 헤쳐나가는데 꽤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을 때보다는 힘을 빼고 느슨하고 유연하게 있을 때 저절로 일이 풀려나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되어지는 경우가 있더란 말이죠.
일이 되려면 분명 노력이 중요하고, 그것이 핵심적이면서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일이 잘 풀리려면 이에 더해 반드시 운이 좋아야 한다는 걸 알겠더라구요.
결국 바라고 원하는 일들은 내가 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돕거나, 운이 좋아서, 또는 우연한 계기로 일이 되거나, 되지 않는다고 믿게 된 것 같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가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이 수많은 우연 속에서 유기적이고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때는 내가 세상을 움직이거나 흔들어 놓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만)
더군다나 나 아닌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여간해선 쉽지 않더군요.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지구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인데, 거기에 속해 있는 우리는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고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이런 지구의 움직임에 종속되어 그냥 딸려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움직이다니요. ㅎㅎ
한 인간은 그냥 어쩌다 보니 수많은 우연으로 세상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더 짙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이런 느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스며들더군요.
그러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 짓게 되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더 늘어가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진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해도,
실패했다거나, 주저앉아 버리고야 말았다는 그런 열등의식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더군요.
다행이죠.
스스로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은.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일단 해보는 거고, 할 수 없거나 나와 맞지 않는 것은 슬쩍 뒤로 미루어 두는 것이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비겁하다거나, 실패했다거나, 초라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으로부터 씁쓸한 뒷맛이 이내 따라붙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아마도… 미련 때문이겠지요.
하루하루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말이죠.
그렇다한들 어쩌겠습니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걸 몸이 먼저 느끼는 나이가 되고 보니, 숙명처럼 세상과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되더라구요.
다만 오늘 내일의 성긴 계획이라도 꾸역꾸역 세워보면서
남은 시간을 그럭저럭 관통해 내는 것이지요.
어쩌면 하루하루 떠밀려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