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오늘은 12월 30일 월요일이고, 연차휴가 중이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2025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았고, 문득 내게 어울리는 영어 이름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Chat GPT에게 50대 남자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물어보았다.
AI가 추천해 준 이름 중에서 예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이름인 James를 발견했고 결국 이것으로 결정을 했다.
'James Jung' 성과 이름을 함께 불렀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딱히 쓰고 싶은 주제는 없었지만, 세모(歲暮)를 하루 앞두고 있어 간단하게라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트북을 켰고, 이어폰을 끼고 '멜론' 플레이 리스트에서 셔플 재생을 눌렀다. 순식간에 카페 소음이 차단되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좋은 음악과 함께하는 것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토니 레니스, 장국영, 비틀즈 그리고 그레고리 포터가 귓속을 가득 채우더니 이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 삶이 오롯이 반짝거리며 순수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개를 들어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쓱 둘러보았는데, 덩달아 행복한 표정인 것만 같다.
상대에게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 놓고있는 사람들을 보자 다시한번 2024년이 저물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12월 초에는 대통령이 사고를 쳐서 몹시 어수선하더니, 어제는 무안에서 여객기가 추락하는 큰 사고가 났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심란했다. 걱정 근심으로부터 의도적으로 고개를 외틀게 되는 것은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거듭되는 골치 아픈 뉴스들에 마음이 피로해진 탓일까. 아무튼 지금은 슬프고 아픈 소식들로부터 동떨어진채 더는 생각하기가 싫어진다. 그냥 이렇게 카페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이 세상으로부터 살짝 비켜나 흡사 천국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느낌이 싫지 않다.
2024년의 첫새벽을 비집고 올라, 해를 맞이하며 한해를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늘 그랬다. 연말이 되어 돌아보면 일년은 순식간에 지나버린 채였다.
우리 삶 또한 다르지 않아서, 부지불식간에 불쑥 죽음을 마주하고 있을 것만 같다. 죽음 앞에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기를 소망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욕심이 남아있을 것만 같아 두렵다.
아무튼 2024년 한해가 다 지나갔다.
특별한 일이 있다면 있었고, 없다면 없었다. 정말 그랬다.
한 개인으로 보자면 다행스럽게도 2024년이 그럭저럭 마무리되었고 좋든 싫든, 올 한 해 동안의 지난 일들은 시간 속에 묻혀 들어가 벌써 기억에서 사그라들고 있는 중이다.
요사이엔 나이가 들며 기억이 휘발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저항이 없어지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더 이상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여길 뿐이다.
2025년 시작과 함께 직장에서는 새로운 보직으로 발령을 받게 될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땐 아쉬움과 서운함이 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차 수긍하고 인정하게 된다. 그런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들과 사람들은 종국에는 시간 속에 모두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무수한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내게도 켜켜이 내려앉아 있다.
그리고 한 겹 한 겹 수십 겹이, 먼지처럼 쌓여 시간의 어둡고 깊은 골짜기 속으로 서서히 서서히 소멸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