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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설국열차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인식의 세상을 넘어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럴듯한 가치관, 사상과 이념, 철학, 관습 등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갇혀 세상을 바라보고는 그것이 대체적으로 옳다라고 믿고 살고 있다. 때로는 자신에게 눌러붙은 세상의 창이 고집스럽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너그러워지며 또다른 가치관을 수용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갇힌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구 밖의 또다른 외계 생명체의 입장에서 지구인들을 바라본다라고 하면....

혹은 우리를 둘러싼 테두리를 벋어나 우주에서 우리의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폐쇄적인 세상을 살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국열차를 보고나서 느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앞서 말한 것 처럼 어쩔수없이 폐쇄적일수 밖에 없는 고착화된 우리의 세계관의 한계이다. 이미 윗부분에서 이미 언급했기에 생략을 하고..

두번째,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그림 우로보로스*가 떠올랐다.

꼬리칸의 정신적 지도자 길리엄, 머리칸을 지배하는 기차의 창시자 윌포드, 그리고 저주받은 꼬리칸에서 반란을 이끄는 커티스....

꼬리는 꼬리일뿐 머리가 이끄는대로 종속적인 세상이 정해져 있는듯하지만 실상 우로보로스의 그림처럼 머리는 꼬리를 물고 있고... 결국 꼬리와 머리가 다르지 않다라는 충격적인 사실..

여기까지만 생각한다라고 하면 이 영화 설국열차는 계급적인 세상 속에서 착취당하는 하층민의 어쩔수 없음을 다루고 있는 그런 평범한 영화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시선은 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우주적으로 확장된다. 기차라는 이 길고 좁은 폐쇄적 공간에 갇혀진 사람은 단지 꼬리칸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국한 된것은 아니다. 앞쪽 칸의 사람들도, 심지어 기차를 창시한 월포드 또한 폐쇄적인 기차를 벋어나지는 못한다.

머리든 꼬리든 양쪽 모두, 태생적으로 수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근본적인 수인의 삶에서도 부조리할 수 밖에 없는 계급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산다. 기차를 영원히 움직이기 위해 머리 칸에서 쉬지 않는 윌포드의 신념(기차를 멈추지 않게하기 위해 즉, 기차에 탑승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심지어 반란까지도 조정하는)은 어찌보면 옳다. 또한 그의 팔과 다리를 희생하면서까지 그 나름의 신념을 고수하는 꼬리의 정신적인 지도자 길리엄은 어떤가? 또한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깨부수기 위해 반란의 리더 커티스 또한 나름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살아간다.

이 부조리하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수없이 계급의 시스템을 유지하기위해 애쓰는 양측의 두 지도자와 기대이상의 반란의 성과를 이루어낸 커디스 모두 옳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폐쇄적인 기차안에서,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우리 세상의 한계 안에서 옳다는 것이다. 다람쥐 체바퀴 돌듯 일년 365일, 같은 선로 위를 돌며 새해를 맞이하는 어쩔 수 없는 기차의 한계인 것이다. 기차는 그 정해진 선로를 따라 움직이고자 하는 항상성을 지닌 존재로 표현된다.

세상은 끝없이 넓은데 기차는 17년간 늘 같은 장소, 같은 길위를 윤회한다. 영화 중간 총격씬에서 기차가 원을 한바퀴 돌며 가는 장면에서 기차는 늘 같은 곳을 돌고 있고, 이는 결국 머리와 꼬리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윤회의 길위에서 캐릭터들은 마치 기차의 부품처럼 쓰여진다. 이전의 연기와는 완전 다른 캐릭터 메이슨역을 연기하는 틸다 스윈튼도 굉장한 비중을 차지 하지만 하나의 부품처럼 어이없게 쓰러지고, 타냐역의 옥타비아 스펜서나 에드가역의 제이미 벨도 예외없이 소모품처럼 사용되었다 버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나마 길리엄, 윌포드, 커티스 등의 역은 좀 나은 편이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주도를 쥐고 있지 못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감독의 뜻하지 않은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의 캐릭터들은 설국 열차라는 그들만의 세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설국열차 내부만이 그들의 세상으로 알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는 이들과는 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남궁민수는 이 설국열차가 품고있는 세상을 깨부수려고 하는 인물이다. 이 폐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세상을 깨부수고 기차에서 벋어나고자 하는 현재의 유일한 캐릭터이다. 그는 철저하게 기차에서 벋어나고자 하는 준비를 해온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차곡차곡 그가 믿는 믿음의 준비를 시작하는 인물이다. 그의 딸 요나는 이런 폐쇄적인 시스템에서 유일하게 이 세상이 폐쇄적이라는 것을 투시할 수 있는 캐릭터다. 그녀는 기차 내부를 투시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갇힌 시스템인 기차를 벋어나고자 하는 남궁민수라는 인물의 딸이 기차 내부를 훤히 내다보는 초능력을 지녔다는 설정은 그럴듯 하다. 결국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는 유일하게 시스템에 종속된 캐릭터가 아닌 것이다.

 

 

반란의 지도자 커티스도 마지막 윌포드와의 대면에서 윌포드의 세계관에 어쩔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이 시스템에 종속되려한다. 하지만 투시력을 가진 요나가 보이지 않는 기차내부를 공개하자 그도 이제 기차라는 한계에서 깨어나 기차의 폐쇄성을 깨부수어 버린다.

이점에서 송강호와 고아성이 맡은 캐릭터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하겠다.

 

영화 설국열차를 보고 난후 또 하나 느낀점을 들자면 이 설국열차는 봉준호라는 감독의 손때가 영화 모든 곳에 덫칠해져서 영화에서 감독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감독이 7년을 준비했다는 이 설국열차는 정말 감독의 영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감독이 그러하듯 감독은 자신의 예술성도 놓치기 싫었고 대중성으로 흥행또한 놓치기 싫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양쪽을 줄타기하며 400억이라는 위험한 외줄위를 긴 장대를 챙겨들고 척척 잘 건너가고 있다.

폐쇄적 공간에서의 끈끈한 액션과 유머.. 그리고 꼬리에서 열차의 칸이 바뀔때 마다 바뀌는 열차내부는 충분한 볼꺼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칸이 바뀔 때마다 그들이 맞딱뜨리는 현실은 의외로 평온하고 따듯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설국열차를 파괴하며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보여주지만 감독은 백곰을 등장시키며 1g의 희망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가 얼마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만들어냈는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영화 장면 곳곳에서 감독의 손때가 엿보인다.

합격을 위해 10년을 철저히 공부한 고시생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철저함이 영화를 볼때 조금 거북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철저하고 빈틈없음이 매끄럽지 못하고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을 준다. 마치 기차의 칸과 칸을 연결하는 곳에서의 덜컹거림처럼 끊기는 느낌으로 다가 온다.

 

또 앞서 말한 것처럼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캐릭터들이 독립적으로 살아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판의 말과 같이 마치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듯해서 전체 흐름에 약간의 단절이 전해진다.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처럼 인간을 보여주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감독은 이 폐쇄적 공간에 너무나 많은 장치를 담아 두었다. 즉, 버리고 싶지않은, 버릴수 없는 감독의 디테일이 오히려 사족이 되어 다가 오는 것 같다. 다시말해 철저히 연구한 감독의 욕심이 많이 보인다.

마지막 반전에서 남궁민수에게 처음 기차에 타고 한달이 지난 시점에 인육을 먹게 되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커티스의 장면은 뭔가 흐름의 단절이 발생하는듯 했다.

 

마치 정말 공부 열심히 한사람이 '나 이렇게 열심히 연구하고 준비했다는 걸 시험관에게 드러내는데...

분명 철저히 준비했고, 그것도 잘했는지는 알지만 왠지 그에게서 인간미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주 그림을 잘 그리는 유명한 화가가 7년을 준비해 그린 유화처럼 빽빽하게 나부랄 곳이 없는 그런 유화 그림같다. 그런데 이 그림이 잘 그린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데.... 천재성이나 예술성이나 뭔가 즉흥적인 느낌을 받지 못할 때의 아쉬움이 바로 내가 설국열차를 보고 나서 느낀

관객으로서의 욕심이었다.

 

분명 감독은 원작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감독은 철저한 준비를 했고, 또 그만큼의 뛰어난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감독의 깊은 철학이 들어 있어 좋은 느낌을 준다.

보이는 세상에 갇혀 사는 우리들...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고아성들의 배우들의 연기도 손색이 없다.

특히 틸다 스윈튼의 연기변신은 그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던 그녀의 연기에 이번 영화로 또 다른 도약이 된 듯하다. 그녀가 이런 역할을 한적이 이전에는 없다.

 

 

# 우로보로스(그리스어: ουροβóρος)

는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이다. 고대의 상징으로 커다란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형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나타난다. 수세기에 걸쳐서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이 상징은 시작이 곧 끝이라는 의미를 지녀 윤회사상 또는 영원성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시대가 바뀌면서 우로보로스는 점차 많은 개념을 함께 지니게 되었는데, 특히 종교적·미신적 상징으로 중요한 상징의 하나로 특히 중세 연금술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고 현대에서도 칼 융과 같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인간의 심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종류의 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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