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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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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이겠지요. 위내시경을 받았다.의사가 프로포플이 들어간다고 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스르르 잠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 꿈마저 꾼듯한데,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자 눈이 떠졌다. 얼떨떨한 채로 시계를 보니 겨우 1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어쩌면 인생 또한 지나고 보면 그저 한순간이겠구나.한순간에 지나지 않을 생을 전전긍긍 살고 있구나.
아이가 될 순 없지 언제부턴가 끙끙거리고 있는 제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음... 그러니까, 앉았다 일어설 때나 조금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혹은 선채로 양말을 신으려고 한쪽 다리를 들 때마다 "어이쿠" 혹은 "으윽" 등과 같은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더군요. 처음 힘에 부쳐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인식했을 땐, 그냥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며 멋쩍게 웃었던 것 같습니다.'내가 이런 소리를 다 내고 있네. 참 별 일이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죠. 하지만 끙끙 앓는 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 빈번해졌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그래, 어쩔 수 없어. 이게 다 늙어가는 생의 과정인 거야.' 매일 운동을 하고, 담배은 피우지 않으며, 영양제도 꼬박꼬박 복용하는 등, 나름의 체력관리를 해오던 저로서는 몸이 예..
좋아한다는 건 외롭다는 겁니다. 살아 보니 계절은 대체로 정직하더군요.이러니 저러니 해도 계절만큼 믿음이 가는 건 드물더라고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죠. 계절은.아이였을 땐 여름을 좋아했고, 청년이 되어서는 가을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니 봄이 좋습니다. 따듯한 기온은 말할 것도 없고요. 피어나는 봄꽃도, 어리고 여린 연두색 잎들도 이쁘고 기특합니다.상큼 발랄한 젊은 친구들의 옷차림도 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우러져서 좋습니다. 아무튼 봄은 싱그러운 계절입니다.어쩌면 늙어 갈수록 싱싱함과 순수함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봄꽃을 보면 그냥 '이쁘구나' 했는데, 요즘엔 시시각각 피어나는 꽃들이 신기하고 대견하기까지 합니다.봄꽃 앞에 서있으면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 되는 것 같군요.이처..
우리는 모두 섭리를 따라 갑니다. 새 울고 꽃이 피는 봄입니다. 꽃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조용히 제 차례를 기다립니다.벚꽃이 폭죽처럼 피고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더니, 어느새 꽃은 지고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더군요. 여린 잎사귀로 햇살이 투과되어 영롱한 것이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요. 어젯밤 산책길에 보니 그사이 나뭇잎들은 초록을 띈 채 훌쩍 커있더군요. 언젠가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고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걸 두고 한 말입니다.꽃이 있더니 꽃은 사라지고 연두색 새순이 나있고, 작고 여린 잎사귀다 싶더니 이제는 제 모습을 갖춘 초록으로 변해있네요. 이런 나무의 변화를 보고 있으면 시시각각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거죠. "꽃 피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세월이로구나." 식물은 한 ..
그냥, 살고 있습니다만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대의 풍광이 마법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낮과 밤이 서로 몸을 섞고 있어서 일까요. 오묘한 어스름의 색채는 업무시간 내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마저 스르르 풀어놓는군요.연분홍과 주홍빛이 층을 짓고 있는 하늘 아래서는 잠깐이지만, 그럴듯한 철학자가 탄생하는 법이죠. 묵직하고 과한 물음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이를테면 ‘산다는 건 무엇인가?’ 허허.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음, 산다는 건 ‘그냥 하루 또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던 시절은 저만치 지나갔으니까요. 어떤 의미를 담기보다는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거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점점 익숙하고 편한 쪽으로 마음은 기울고, 나만의 방식과 루틴으로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세월이 지나..
봄이 오나 봄 새가 울고, 꽃이 핍니다. (꽃 피고 새 우는 것이 아니라, 새가 먼저 울고 꽃이 피더군요.)집 베란다에 군자란은 벌써부터 주홍색 꽃다발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요 며칠 볕이 좋더니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목련촉이 영글었습니다. 매화와 산수유가 피었으니 이제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도 피겠지요. 꽃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조용히 제 차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저만의 봄을 피워내겠지요.매화꽃 사이로 윙윙 벌들이 분주하게 돌아니고 있습니다.굼뜬 길냥이들의 움직임도 오늘은 가벼워 보이는군요.연근해로부터 봄이 지천으로 밀려들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겨울옷들을 정리해 세탁소에 맡겨야겠습니다.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걸, 아는 나이가 싫지 않습니다.산책 중에 아내가 뜬금없이 주머니칼이 있냐며 묻습니다.생뚱맞은..
게으름을 향해 이따금 게으름을 누리고 있는 제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어려서부터 근면성실한 삶이 바람직하다고 배워선지, 지금까지는 대체로 그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부지런함이 주는 결과 또한 그럭저럭 만족스러웠고요.그런데 말입니다, 부지런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믿음으로, 쫒기 듯 살아가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게으름을 꿈꾸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군요.'게으름'이란 단어를 Daum에서 검색하니 ‘행동이나 일 처리가 느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버릇이나 성미'라고 나와 있네요. 저는 성격이 급한 탓에 행동이나 일을 미루지 않고 서둘러하는 편이라, 느긋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이런 걸 보면 저는 게으른 성품을 타고나지는 않은 듯합니다만… 뭐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부지런한 것도 아닙니다. 언젠가부터 느긋하고 행..
슴슴한 맛 예전에는 맵고 짠 음식을 즐겼습니다만 이젠 간이 세게 된 음식을 먹고 나면 위와 장이 부대끼고 자주 과민반응이 나타나더군요.자극적인 음식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되도록 멀리하게 되고 심심하게 간이 밴 음식이 오히려 입에 잘 맞더군요.이런 취향의 변화는 비단 음식만은 아닌가 봅니다. 책이나 영화, 음악에 대한 기호마저도 확연히 달라져서 예전에 좋아했던 격정적이고 번뜩이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작품보다는 심심한 듯 은은하면서도, 서서히 스며드는 듯한, 하지만 뭉근하게 전해지는, 에너지의 총량은 상당한, 그런 작품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살아보니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들은 반짝 타들어가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밋밋하고 슴슴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도드라지거나 돋보이지는 않지만 그 여운은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