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김소연
273P
십대
너는 혼자 있지 못해서 몸살이 나 있고, 혼자인 게 싫어서 병이 나 있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방해를, 친구와 붙어 있고 싶을 때는감시를 하는 그들이 친부모가 맞나 싶은 너의 그 눈빛은 언제나 불만으로 휑하다.
나는 너의 그 눈빛에 껄껄 소리 내어 웃는다. 지각하고 화장실 청소를 도맡은 패배자의 서글픈 모습 하며, 수학시험을 망치곤 연필을 집어 던지며 세상의 부조리를 힐난하는 모습 하며,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많으면서도 세상을 거칠게 요약해버리는 터프함 하며, 친구하고라면 지옥불에도 뛰어들 것 같은 막무가내, 지우개를 빌려주지 않는 친구를 금세 적으로 간주하는 변덕, 어른이 되어봤자 허무한 생을 구가할 뿐이라는 대범한 허무는 또 어떻고. 인생이 싫다면서, 수첩에다 갖은 색깔에 갖은 스티커를 붙이며 하루하루흫 깜찍하게 점묘해내는 그 섬세함. 친구에 온 눈을 주는, 도저히 말릴 수 없는 몰입. 속된 선생과 유치한 학생으로 바글거리는 학교를 미친 곳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냉철함. 일상은 비참할 정도로 단조롭고 안이하지만, 감정선만큼은 대담함과 섬세함을 가장 크게 그리는.
너를 바라보면 꼭 어렸을 때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추억이라고 하는 쓸쓸한 긴장감들이 따뜻한 긴장감으로 치환된다. 추억과 실재의 가격을 뚫어지게 인지하고 있는 내가, 감정과 현실을 뚫어지게 인지하고 있는 너에게 동지애를 느낌다고 하면, 너는 재수 없다 할까, 반가워할까. 이쁘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에게. 그때 그 불만퉝이의 노여움과 서러움을 가득한 내 눈빛을 보고 이쁘다고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에게. 누구나 그것 것이니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어느 때라도 그렇게 하게 될지 모르니까. 부모의 회초리를 맞아가며 그렇게 하는 게 그나마 덜 쓸쓸하니까.
십대는 감정을 일일이 실천해내는 무모한 맞으로 사는 거다. 네가 미리 겁먹을 만치 이 세상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사람들이 떠벌이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요한하지도 않다. 단지 그럭저럭 흘러가는, 고수부지에서 바라보는 강물 같다. 너도 그걸 알고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고수부지로 달려가 강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강물에다 캭, 하고 침 한 번 뱉고 돌아서는 것은 아닌지.
# 참으로 공감가는 문장이다. 십대... 나도 이미 그랬고.. 우리 딸도 지금 이러할 것이고 더 할 것이다.
'책 속 한문장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이기지 마라 (0) | 2017.07.12 |
---|---|
유시민의 공감필법 (0) | 2017.07.03 |
기적 (0) | 2017.06.21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고통이란 삶의 거름이다. (0) | 2017.06.09 |
도덕경 63장 (0) | 2017.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