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이다.
아내가 뜬금없이 남자들은 가을을 탄다는데 당신은 가을 안타냐고 물어왔다.
아내의 말을 듣고 멋적게 웃어보이며 나도 가을을 탄다고 했더니..
대뜸 피식 웃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겪어보니 나라는 사람은 가을 안탄다며 제멋데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것이 아내와 만난 후, 딱히 가을을 탔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은근슬쩍 찾아와 가슴을 공허하게 만들던 가을이 내게도 엄연히 존재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상하게 가을에는 약해졌다. 남자들은 가을을 탄다는 속설에 딱들어 맞는 인간이 나란 놈이었다.
아침에 내려앉은 차거운 공기도,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도, 맑은 하늘도 심지어 풍성한 가을들녘도...
모두 슬프고 공허하기만 하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아내와 만나고 부터는 가을을 탄적이 없었다.
가을은 홀로 있는 자에게 깊히 스며들기 제격이다.
그러므로 짝을 이루고 있는 그 동안은 가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내의 말이 화근이 된것일까?
2주전 부터 생활 리듬이 깨지더니... 급기야 며칠 전 아내의 말처럼 가을을 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 추진력은 가을 볕에 녹아 버린 것인지... 그냥 그전까지 해오던 일상들이 귀찮고 심드렁하다.
그래서 토요일 밤에는 오랜만에 홀로 영화를 보러가보았다. 그래도 나즈막이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떠오를 줄 몰랐다.
친구녀석들에게 전화를 걸면 그네들의 목소리에선 한결같이 고단한 삶이 묻어 나왔다.
그럴수록 가슴에 뚫린 구멍은 커져만 갔다.
급기야 월요일인 오늘,
회의에 참석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은 예사롭지 않았다.
회사로 오던 도중,
길을 버리고 한번도 가본적 없는 강변길을 잡았다.
천천히 차를 몰며 이대로 친구가 있는 부산으로 가볼까하는 생각도 했고..
직장과 삶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하고... 친구들을 떠올려 보고...
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들였다.
그 와중에 유일한 위한은 길가에 줄지어선 코스모스 꽃과
라디오에서 풀려나온 느슨한 음악과
척척 시골길을 가로지르던 키큰 백로를 경음기로 놀래켜 준 것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와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다들 자신만의 사연을 얼굴에 담고 이래저래 일을 하고 있었다.
드라이브를 즐기고 오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도 오늘,
어쩌면 이른 퇴근을 하고 부산으로 바람쐬러 갈지 모르는
그런 가을인 것이다.
가을 낯빛에 기운이 조심스레 가라앉는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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