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서 느닺없이 폭염경보음을 알리는 날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여름입니다.
이런 무더위에도 다들 잘 지내시겠지요?
40년 이상의 세월에 떠밀려가다보면 이런 더위는 견디기 힘들도 제법 익숙해질만한 나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말그대로 해묵은 사람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재'씨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오늘 아침 출근준비를 하며 문득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오며 안부를 전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몇몇 문장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습지요, 삶이 이렇습니다.
어떠한 일들은 딱히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연하고도 갑작스럽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왜그런지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안에서 가끔씩 일어나기도 하는 겁니다.
삶의 상당 부분이 이러하다는 걸, 진작부터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딸에게 왜그러냐고 물었을 때 자주 돌아오는 말처럼.. '그냥'인 것이지요.
왜 갑작스럽게 편지를 쓰고 싶었냐구요?
저 역시 대답은 '그냥'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보고 싶었을 수도, 어쩌면 근황이 궁금했을지도, 또 어쩌면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정확한 이유는 좀처럼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대자연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왜냐고 묻는 다면, 이건 우문이겠지요.
自然은 말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존재기때문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러한 것에게 왜냐고 묻지 마세요.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일테니까요.
그냥저냥 가까운 친구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방식의 소통이 아닌 뭐..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냥' 쓰고 싶었나 봅니다.
SNS를 통해 전해오는 일련의 소식들에 답을 달진 않지만 간혹 대답을 찾아 자판을 톡톡 누르다가도..
제 자신의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기에는 이러한 매체가 지닌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거두어 들일 때가 많습니다.
법원소장 소식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주식소식에 궁금하기도 하고, 정치 소식에 약간의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몇자 안되는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기것에 대한 분명한 한계를 느끼게 되어 답을 삼가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스스로 단문보다는 장문이 더 어울리는, 재미없는 '아재'씨로 분류되는 것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제 근황을 소소히 알려드리자면 이러합니다.
저는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주중엔 아침 6시 20분 경에 눈을 뜨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로 가서 세면을 하고, 주섬주섬 옷과 양말을 끼워입고,
살며시.. 자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흘낏 본 후에 출근길에 오릅니다.
7시에 시동을 켜고, EBS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춘 채, 회사에 도착하면 7시 30분.. 그리고 조용히 업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면 어느듯 한결같은 저녁이 또다시 찾아와 있습니다.
빠르면 7시 30분에, 보통 8시 그 언저리에 퇴근을 하고
8시 30분경이면, 늘 그렇듯..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시계를 차고, 런닝화를 꿰어 신고 2.3KM 조깅을 합니다.
그리고는 약 11분 뒤면 숨을 헐덕거리고,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팔굽혀 펴기 110개를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오면 9시 10분 경...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 시간은 9시 20분 쯤이 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텔레비젼 시청과 잠자리에 들기 전, 꾸벅꾸벅 비몽사몽 독서를 하다가 잠이들면 12시, 그 언저리입니다.
이게 저의 주중 일상인데요. 돌아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별반 재미가 없는 일상인데... 그래도 이 재미없고 반복적인 일상에 나름의 맛은 있습니다.
마치 밥알을 오래 씹다보면 처음에는 별스런 맛이 없지만 나중에는 희미하게나마 단맛이 돌게 되는 그런 재미,
입맛을 자극하는 특별한 맛은 없는데 곱씹으면 나름 그것도 그럭저럭 맛이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주말 역시 단순합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7시 30분경 눈을 뜨고 조용히 책을 읽고, 아이들이 깨어나면 함께 아침을 먹고 수영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2KM 정도 수영을 하고 돌아와, 토요일 오전이면 MBC 메이져리그를 보다가 아내와 점심을 해결할 궁리를 하고..
아내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기도 합니다. 주말 저녁 무렵이되면 아들녀석과 캐치볼을 하고,
2주에 한번은 부모님댁에서 저녁을 먹고 오고... 주말 마다 1번 내지 2번은 외식을 하러 나가고.. 6시 30분이면 무한도전을 시청하고,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저녁에는 집 앞에 생긴 커피숍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면 KBS 타큐멘터리 3일을 보며 주말을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이 흘러가는 것이 저의 한주지요.. 물론 이 한주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의 일들은 알려드릴수도,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좀처럼 알기 쉽지않은 그런 시간들이 마구마구 흘러가고 있지요.
이 재미없는 일상은 저에게 스스로 그러한, 즉 자연스러운 제 일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익숙해진 일상이 자연스러운 이제는 이런 패턴을 탈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저어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며칠 전, 부산에서 술 한잔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전화에 심드렁하게 대답한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였을 겁니다.
사실, 그간 익숙한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특별한 일없는 주말 일상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요즘의 나날입니다.
이런 저도 아주 소싯적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때에는 가족보다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친구에 대한 이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이벤트 그리고... 그냥 전화를 걸거나 그냥 찾아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은 있었지만 그당시 내겐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봅니다.
물론 그로 인해 기쁨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혼자서 실망했던 적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한번, 당시엔 왜 그랬냐고 물어 온다면, 아시는 것처럼 저의 대답은 '그냥' 입니다.
제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제 여름입니다.
이맘때면 친구들과 함께한 몇몇 여름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여름의 설악산, 여름의 해운대 술자리, 여름의 지리산 계곡, 여름의 송정해수욕장의 저녁, 여름의 청도 남산골 계곡....
여름이 한창이면 우리는 익숙하게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문득 생각이 피어오르는 것이겠지요.
저도 잠시나마 자연스러운 일상을 물리고 싶어집니다.
여름이니까요.
여름이면 익숙한 모습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이 더운 여름,
나름 시간과 조건이 허락하는 친구들 몇몇 모여 이야기 나누고 싶어집니다.
만나서 우릴 둘러싼 주변인이나 세상의 이야기보다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듣고 싶습니다.
때때로 폭염경보 울리는 여름이니까요.
P.S 법원 소장 소식에 걱정이 앞섭니다. 아무쪼록 별일 아니거나 무탈하게 마무리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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