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정 호 승
사막여우
너를 따라 사막의 사막 속으로 도망쳐 버릴껄 그랬어
모래 위에 난 너의 발자국을 쫓아 영원히 사라져 버릴껄 그랬어
서울로 돌아와도 아무도 나를 찾는 이 없는데
이별한 뒤에도 또 이별할 일만 남아 있는데
너를 따라가 맛있는 너의 먹잇감이나 되어줄 걸 그랬어
추워 떨며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나에게
네가 살며시 웃으면서 다가왔을 때
나는 왜 너를 멀리 쫓아버리고 말았는지
사막의 그 먼 밤길을 오직 내가 보고 싶어 찾아온 줄도 모르고
굴속에 재워둔 귀여운 새끼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꾸 날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줄도 모르고
나는 날카로운 플래시의 불빛을 너의 얼굴에 계속 비추기만 했는지
네가 막 새벽 지평선 위로 떠오른
노란 오렌지 조각 같은 반달을 내 머리맡에 데리고 왔을 때에도
네가 사막의 별들을 모두 모래 위에 내려앉게 하고
흰 조약돌 같은 북두칠성을 내 손에 쥐여주었을 때에도
나는 왜 나를 버리고 너를 따라가지 못했는지
그리운 사막여우
네가 나 대신 물고 간 내 가난한 신발 한 짝은 잘 있는지
지금도 내 신발을 물고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사막의 사막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있는지
<사막여우 전문>
# 그 때 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못했던...
그런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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