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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문장 읽기

지지않는 다는 말

지지 않는다는 말

     지은이: 김연수

 

 

9P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전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19P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6시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때뿐인데, 햇살이 뜨겁다고 해서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6시의 달리기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우선 두려움과 고통은 다르다는 점이다. 달리기 직전까지가 힘들까 봐 두려운 거지,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두려움 같은 건 사라진다. 더 힘들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사실 더 힘들어지면 또 사라진다.

반면에 고통은 순수한 경험이라 미리 겪을 수 없지만 분명히 거기 존재한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그래서 달리는 내내 열기로 인한 그 고통은 나를 둘러싸고 놔 주지 않는다. 나는 온몸의 감각을 모두 동원해서 그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다.

 

 

21P

 틱낫한 스님이 전하는 베트남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를 떠난 수행자는 파괴될 것이다. 산을 떠난 호랑이가 인가에게 잡히듯이."

 내 식대로 고치자면,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어라. 행복하고 괴로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