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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보내다

Y를 터미널에 내려주고 왔다. 

홀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울쩍하고 공허한 기분이 되었다. 

정말이지 잠시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했다. 근래에 느껴 본 적 없는 쓸쓸함이었다.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산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성남까지 4시간을 넘게 가야하는 친구의 여정이 더 외롭고 쓸쓸할 것만 같은데

오히려 Y보다 더 적적한 마음이 든 것 같은 나였다.     


모든 터미널이나 역 그리고 공항이라는 장소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장소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배웅하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모두 서로 홀로 남겨지게 된다. 

떠나가는 이도 물론 외로움의 시간을 통과하겠지만, 오히려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것은, 떠나가는 사람은 도착지를 그리면서, 어서 빨리 그곳에 도착하기를 바라기에 두고 온것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 버리려 하지만

 남겨진 사람은 떠난이를 배려하고, 그를 떠올리며 그리워 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장소들은 떠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기 보다 배웅하는 사람, 즉 남겨진 사람을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이의 쓸쓸함은 떠나가는 사람의 것보다 더 깊고 무거운 것 일지도 모르겠다.

보내는 사람은 떠나가는 이의 긴 여정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가 가야할 먼길을 생각하면, 조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나처럼 스스로 울쩍해지지 않을까?


 Y가 간만에 고향으로 온다는 소식에 이곳에 있던 친구들이 일사천리로 1박 2일, 모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Y가 사는 곳은 성남이였고, Y의 형도 서울 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기에, 몇년 전부터 Y의 어머니가 명절에 서울로 올라가는 이른바 역귀성을 하고 있어, 서로 작정하고 만나지 않으면 이제 Y는 명절에도, 평소에도 자주 볼수 없는 친구였다. 

그런 Y와 몇주 전 길게 통화를 한적이 있었다.

늦은 밤이었고, Y는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근처 놀이터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길게 전화를 했던 것 같다. 휴대전화 너머로 가을 풀벌레 소리가 제법 청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Y에게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Y는 뜨악해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리 없다고 했다.

이에 나는 휴대전화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또렷하게 잘 들려오고 있다 했고, 그제야 Y도 풀벌레 소리가 정말 들린다 했다.

Y는 내가 풀벌레 소리를 꺼내기 전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Y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Y를 후다닥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Y를 생각했고,

내 울쩍한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Y가 고맙고, 고맙고, 자꾸 고마웠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일은

떠나간 사람의 몫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몫임을...

그러한 일은 남겨진 이의 입장에서 몹시 외롭고도 쓸쓸한 일임을...

언젠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만 하고,

결국 덩그러니 남겨진 시간에 익숙해져야 함을 어렴풋하게 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고맙고, 고맙고, 고맙고,


    

* Y!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심심풀이 하라고 너를 위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