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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또 필수품을 낳고, 그 필수품이 새로운 사치품을 만들고, 이 새로운 사치품이 필 수품이 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자연과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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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Karl Mark 1818-1883가 젊었을 때 쓴 《경제학-철 학 수고0koromich philosophische Marukriple aus dem Jahre, 1844》에서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덧붙이죠. ’사랑했 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필연적으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통찰이에요. 그러니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기적이나 선물이지 당연한 대가가 아니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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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주인이라고 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노예라고 불러요. 고전적 정의예요. 질적으로 보면 아직도 억압사회인 거죠. '소비사회'라는 논리로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되기 때문에 노동 계급한테 소비자의 위상을 주는 거예요. 월급을 주고 물건 만들고, 또 그 돈으로 소비하고, 이 과정이 계속 돌면서 계속 월급쟁이 생활을 하지만, 과거 농노보다는 경제 사정이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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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위대하게 보지 않으면 돼요. 스스로 배워야 되고, 세상에 대해서 평가 내리고 생각한 대로 떠들고 다니지 말아야 되고, 자신이 항상 작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돼요. 그 태도만 유지하면 돼요. 그리고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고맙게 여기는 태도는 기본이고요. 벽돌을 올리는 사람의 힘 자체가 얼마나 센 것인지를 알아야 해요. 이삿짐 나르는 사람을 돈 주고 부릴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없다면 이사를 할 수 있겠어요?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 하는 거죠. 우리는 냉장고 하나도 혼자서 못 들어요.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착취하는 구조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자각이 있어야죠. 고생하셨어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돼요. 내가 돈을 주고 배달을 시키니까 저 사람들이 월급을 받는 거 아니냐고 하면 답이 없는 거죠. 아무리 돈 가진 사람, 땅 가진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해도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부정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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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평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SNS 공간에서는 이슈가 되는 그 담론만 협소하게 잡혀요. 그 사람이 누구의 아들이고, 어떤 경험을 했고, 언젠가 병든 강아지를 돌봤던 사람이었다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단편적인 사건 하나만 잡히는 거죠. SNS든 미디어든 스마트폰의 편집 기능으로는 전체 상을 제공하지 못해요. 가장 강렬한 하나의 단면만 드러내 는 거죠. 단편화하고, 파편화하고, 자극적으로 이슈를 만들어요. 거기다가 조회 수와 팔로워를 의식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냉정하고 잔인하고 선정적인 댓글이 달리죠. 상대방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니까. 이미 그 공간은 차가워진 공간이에요. 애정의 공간이 아닌 자본주의가 제공해준 고립된 공간, 거기서 세계를 쾌와 불쾌로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농담 삼아 그러죠. '그럼 직접 만나자.’(웃음) 그런 발화를 한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건 겁을 주는 게 아니라, 나를 판단하려면 내 전체를 봐달라는 요구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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