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중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믿음에 대한 강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믿음의 방향성도 존재한다.
즉, 누구에게나 믿음에 대한 방식은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神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神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크기는 다를 지 언정 둘 모두 믿음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에게는 神이 존재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요,
후자에게는 神이 존재하지 않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론을 보고서..
맞기는 맞는데 이것은 추상적이고 실천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에게서의 믿음은 내용은 맞지만 어렵거나 실천 가능성이 없다고 한정 짓는 믿음인 것이다.
믿음은 그 사람이 꼭 믿는 만큼만 존재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진실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그 한 개인과 교인들에게는 진실로 하나님은 존재하는 것이요.
반 기독교를 외치는 종교가 있어 한 사람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안는다고 말한다면 그의 세상에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있을 것도 같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있어 믿음의 크기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 비해 믿음의 크기는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고..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위의 사람을 본다면 저 사람은 믿음이 없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 믿음은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를 띄며 존재하고 있지만
그 믿음의 크기는 각자의 수용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한 개인의 보편적인 판단의 잣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믿고, 안 믿고, 아주 믿고, 조금 믿고는
한 개인의 성향이나, 환경, 수양정도, 혹은 호불호에 따라 선택되는 것일 따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보편적인 믿음이라면
그 믿음에 대한 크기를 어느정도 키워나가는 방향성을 띄어야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해본다.
그것은 일류 보편의 믿음은 우주의 순방향성을 띄게 됨으로 역행보다는 흐름이 원할 할 것이고..
한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끊임없는 환경변화의 비바람에도 견뎌 낼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스게 소리지만 믿음을 키워나가는데는 돈은 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믿음은 꼭 그가 가진 믿음의 크기 만큼만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