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시크릿 DVD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진짜 성공할 사람들이나.. 찐자,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냥 알게 된다고..
그것은 호언장담이나 자신감과는 대조되는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진심이 있다고 말했다.
충분히 공감이가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평소, 나 자신의 작태가 친구의 말과 같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랬다..
진실로 어떤한 것을 알고, 가지고 있다면
자기 자신이 알게 된다. 아니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고..
자기 자신을 믿게 된다. 아니 믿게 된다고 인식을 못할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뭇어 나온다.
자타가 알게 모르게 믿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호들갑을 떨거나, 흥분하거나, 기쁨에 가득차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시간이 흐를 수록 처음 시크릿에 대해 접했을 때와는 강도와 느낌의 깊이가 다르다.
물론 진실로 그것을 알고 있지만... 지난 주와 같은 감응의 정도는 지속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느낀 감정은 나 자신을 속인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정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모든 파장은 고저 장단이 있다. 새옹지마...
그렇다... 흥분을 하고 들떠 있다면 곧 그런 감정은
가라앉고 사그라 들것이다.
주파수가 크고 그것의 주기가 짧을 수록
반대의 기분으로 떨어지기도 쉬운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은 진실된 감정이었다. 하지만 주파수가 컸고, 주기또한 짧은 것일 수가 있다.
그렇다고 그런 긍정의 기분이 헛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꾸준히 긍정의 진동의 파장을
길게 유지해야하고
크기 또한 낙폭이 작게 유지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작심삼일을 꾸준히 실천하면 될 것이다.
작심삼일이 10번 모이면 1달이 되고 120번만 작심삼일 하면 일년이 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긍정의 주파수가
습관으로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
친구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고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 긍정의 주파수를 받아야 하고
자주 흥분에 떨고, 가라앉고, 파장의 길이를 조금씩 늘려나가다 보면
친구의 말처럼 그냥 알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하루 아침에 로마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인슈타인도
베토벤도
뉴턴도
링컨도
에디슨도
공자도
朝聞道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자가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공자이기 때문이고
하루 아침에, 아무나,
도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의 조용한 악장 끝에서
연주회장을 가득메운 청중들의 숨죽인 침묵 속에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완벽하게 연주된 단 하나의 또렷한 음표처럼,
진실의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진실은 조용하게, 스스로 말을 하는 법이다.
(굵은 글씨체는 짐 콜린스의 "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191P 인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