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찰스 핸디
143- 147P "아버지의 죽음" -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뒤 돌아가던 길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더블린 병원에 입원했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부모란 항상 곁에 있는 존재려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사제직에서 은퇴한 지 겨우 2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으니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경영학자로서 나름 화려한 이력을 쌓고 있었다. 제트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고 책도 내면서 있는 힘을 다해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쨌든 아버지는 일흔 넷이었고 최근에 경미한 심장병을 앓았던 적도 있었다.
급히 아일랜드로 돌아가 어머와 여동생들과 함께 아버지의 병상을 지켰다. 아버지는 내가 도착한 다음날 끝내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로 돌아가셨다.
슬펐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조용하고, 온화하고, 인정이 많은 분이었다. 나는 교회에서 예배를 집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좋아했지만, 솔직히 집에서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은둔자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성직자로 일한 대부분의 기간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같은 시골 교구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하시다니, 승진 기회와 대도시 교구로 옮기라는 권유조차 거절하면서 말이다. 대도시 교구로 갔다면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내 생활이 좀 더 즐거웠을 텐데 싶었다. 아버지는 도대체 야망이라곤 없는 사람 같았다.
아일랜드에서는 죽은 이틀 뒤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전통이므로 서둘러 아버지를 교구교회로 모셔갈 준비를 했다. 더블린 시내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교회로 아버지가 많지 않은 개신교도들을 보살피며 40년 동안 성직자로서 임무를 다했던 곳이다. 다음날 신문에 부고를 내긴 했지만 나는 장례식이 조촐한 가족행사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조용했던 사람의 조용한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우리 가족들은 더블린에서 간선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영구차를 따라갔다. 가족 모두 말을 아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익숙한 길을 따라거는 슬픈 여정이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마을로 접어드는 갈림길 근처까지 왔을 무렵 갓길에서 경찰차가 나타나 다가오는 차향을 정지시키고 길옆에서 운구차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우리는 경찰 에스코트를 신청한 적이 없었다. 이어 시골 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교회에 도착해서 보니 수백 미터에 걸쳐 차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 누군가 우리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교회 자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이 교회 밖에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교회 안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합창단이 들어 왔는데, 언제나처럼 흑백으로 구성된 성가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들 옷이 너무 작다는 것이 역연히 들어났다. 이들은 평소의 소년 성가대원들이 아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서서히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버지를 위해 한 번 더 성가대석에 앉고자 아일랜드 각지에서 몰려든 과거의 성가대원들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상사인 대주교도 와 있었다. 대주교는 국교회 예복으로 성장을 하고 성가대 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대주교가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대주교는 아버지를 마지막 보내는 여정에 함께하고자 퇴원을 하고 먼 길을 왔던 것이다. 대주교는 회중을 향해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실로 많은 사람을 도왔고, 참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아버지의 삶과 성직활동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하관한 뒤 흙을 덮지 않은 무덤 앞에 서있는데,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한데 왔다.
"당신 아버지한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교회에서 우리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셨고, 몇 년 전에는 우리 딸아이도 여기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 가족한테 너무나 중요한 분이었어요." 어떤이가 말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나 현명한 조언을 해주셨지요. 세상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분 같았어요."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많이 그리울 겁니다. 이런 분은 많지 않으니까요." 여러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거기 서서 아버지에 대해 곰곰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내 장례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줄까? 자문해 보았다. 부고는 딱 하루 나갔을 뿐인데 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열 일 제치고 와주다니, 입소문이 세긴 센 모양이었다. 내 삶과 일이 누구한데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아버지가 깊이 영향을 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 바쁜 일상과 소위 성공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 생각할수록 아버지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버지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있었다. 나는 비뚤어진 시선으로 아버지를 판단하고 비판했다.
슬픔과 함께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는 바쁜 일상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먼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가치관과 야망을 결정하는 대신, 남의 가치관과 야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잘못된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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