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가을은 오고
사내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 평소 같으면 힘없고 찌뿌듯했을 월요일 출근길.
벌써 몇 주전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청명하게 밤하늘로 퍼지는 것이 가을이 그닥 멀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밤공기는 여전히 무덥고 후텁지근해서 지칠 줄 모르는 여름의 왕성한 힘에 눌린 사내는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 답답한 한숨을 푸푸 내뱉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름은 더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치 열대우림 기후처럼 많은 비를 불러들였다.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 습도까지 높아서 사내의 몸 속 어딘가로 어떤 불쾌한 덩어리같은 것이 스물스물 기어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9월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누그러지는가 싶었더니, 다시 꼬박 일주일 동안 비가 쏟아져 사내의 기분을 마뜩찮게 만들었다.
"하! 도대체 저 놈은 깜빡이도 안 넣고 껴드는거야!"
"쯧, 빨리 안가고 뭐하고 있는 거야! 신호가 바뀐 지가 언젠데!"
요사이 운전을 하는 동안 사내의 입에선 이런 짜증 섞인 말들이 부쩍 늘어났다. 스스로도 요즘 짜증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아이구! 내가 요즘 왜 이렇지?"
이런 후회 뒤에는 어김없이 '아! 덥다 더워!'라는 말이 사내의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부쩍 늘어난 짜증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늦더위와 쉼없이 내리는 비에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는 사이에 사내는 은근히 기다렸던 추석연휴(사실 사내는 벌써 한달 전부터 나흘간의 이 연휴를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연휴동안 딱히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나흘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서둘러 마중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를 맞이하지만 추석 아침, 차례상 풍경은 어떠했던가?
추석, 그러니까 가을 추(秋)자를 쓰는 이 명절, 사내와 가족들은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혹은 이마에 연신 땀을 흘리며 결국 에어컨을 틀지않았던가? 유년시절 제법 쌀쌀했던 추석 아침을 기억 속에서 떠올려보고는 더욱더 이런 이상기후가 못마땅했다.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연휴를 갖는다는 것 이외에 딱히 즐거움을 찾지 못한 사내는 추석연휴가 끝나자 전보다 좀더 짜증을 부렸다. 보다 못한 사내의 아내는 당신 도대체 요즘 왜 그러는 거냐며 톡 쏘아 붙였다. 사내도 자신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덥고 습한 날씨는 이제 지긋지긋해졌다는 것 외에는.
그리고 9월 19일 오늘 이 아침, 사내는 마침내 자신의 피부와 폐부로 스며드는 차가운 대기에서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사내는 티백 옥수수차를 마시며 회사사옥 앞 정원에 나지막한 감나무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직 홍시는 못되었지만 잘 익은 주홍빛 감 하나가 넓은 잎사귀들 사이에서 오롯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아!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오늘 아침, 사내는 발간 감 하나에 가을을 온통 받아들이고 인정해버렸다. 아침 출근길보다 사내의 기분이 한층 더 들떴다. 날씨에 따라 사람들의 기분이 좌우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던 사내는 특히 오늘,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날씨와 사람들의 기분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더더욱 증폭되었다. 이런 생각이 더 깊어지자 계절과 같은 대자연의 변화가 그저 신기함을 훌쩍 뛰어넘어 그 어떤 경외심에 마저 불러 일으켰고, 평상시 제 잘난 맛에 살던 사내로 하여금 작은 겸손까지 심어주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는 최근 심한 감기몸살로 2주 동안 몹시 고생을 했고, 지난 주 금요일에는 새로 산 구두를 신고는 왼쪽 발 인대에 무리가 갔는지 아직까지 걸음을 절뚝거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의 건강을 자신하던 사내였지만 이렇게 건강에 연달아 빨간불이 켜지자, 지금까지 얼마나 자신이 건방을 떨며 타인들에게 잘난 척을 해댔었는지 이번 참에 느끼는 바가 컸다. 또한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는 마냥 젊음을 누리며 살아갈 수만은 없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내년이면 사십, 중년?”
중년이라는 말은 사내가 도저히 받아 들이고 싶지않은, 딱 잘라 거부하고 싶은 아주 무겁고도 언짢은 단어였다. 사내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중년이라는 말과는 아주아주 멀리 떨어져있다고 믿고 있었다. 중년이라는 중압보다는 차라리 내년이면 그냥 마흔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받아들이기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이 마흔이라는 나이가 사내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불과 오년 전쯤만 하더라도 사내는 마흔이라고 하면 세월의 더께를 덕지덕지 둘러쓴 그야말로 중년의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런 나이가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찾아올 것이라고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지는 몰랐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불쑥 내뱉은 쓴 농담처럼 그렇게 마흔이 사내의 앞에 떡 하니 서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계절의 변화에 약간 들떴던 사내의 기분이 금새 찹찹하게 가라 앉았다.
점심 반찬으로 먹은 전어구이 잔가시가 목에 걸렸는지 사내가 밭은 기침을 해댔다. 종이컵 속에 티백 메밀차를 조심스레 넣은 후,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두고는 잠시 차가 식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창 밖에 걸려있는 하늘은 흡사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떠있는 윈도우 바탕화면처럼 맑고 높았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가을인 것 같네! 너, 요즘은 가을 안타니? 예전엔 가을만 되면 얘가 좀 이상하게 변했잖아?"
지난 12년간 사내와 함께 근무를 하고 있는 대학 동기녀석이 사내의 앞에 선 채, 마치 '너에 대해서는 모든 걸 다 안다'라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고 있다.
뜨거운 메밀차가 입술에 닿자 사내의 몸이 움찔거린다.
가을, 사내는 유독 가을을 탔었다. 사내가 아직 청년이었던 시절, 가을이 찾아오면 조금씩 센치멘탈해지면서 가을이 깊어 갈수록 얼굴엔 우울이 깊어 갔고, 급기야 가을의 끝자락이 될 무렵이면 음침한 기운마저도 흐르는 듯했다. 또 가을이 되면 사내는 어떤 의식행위를 치르는 사람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길렀고,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 그 시절 가을이 돌아오면 사내의 손에는 수동 니콘 FM2카메라가 자주 눈에 띄었고, 때로는 부산국제영화 티켓이 쥐어져 있기도 했었다. 또 어떤 날에는 하루 온종일 이어폰에서는 모짜르트나 너바나, 혹은 비틀즈나 김광석, 뉴 트롤스가 쉴새 없이 흘러나오기도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사내는 먹먹한 가슴이 되어 고독에 서서히 취해갔다. 마냥 답답하기만 했던 사내의 청년기는 그렇게 젖어 들어갔고, 가을에 취한 사내는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 채 몽유병 환자처럼 가을밤을 걷고 또 걷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내는 가을을 타지 않았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또 아이가 태어나고, 승진을 하고, 은행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조금씩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한때 가을을 몹시도 탔던 청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이 얼떨떨하게 여겨질 만큼 차츰차츰 사내는 변해왔다. 어쩌면 그 이유가 팍팍한 직장인으로써 십여 년을 보내는 동안 더 이상 가을에 만취할 여유도, 그 가을에 발목 잡힐 겨를도, 사내의 발 밑을 구르며 지나가는 가을을 찬찬히 들여다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사내는 조금은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이내 맑은 웃음을 되찾으며, 무의식 중에 여러 번 구겨놓았던 종이컵을 마치 농구선수처럼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었다. 공처럼 구겨진 종이컵이 쓰레기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앗싸!”
사내가 오른손 주먹을 어깨높이로 힘껏 치켜들며 어린아이처럼 골을 자축했다.
“먼저 들어 갑니다!”
퇴근무렵이 되면 사내는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사내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편안했다. 하지만 오늘 이 저녁 퇴근길은 몸도, 마음도 모두 가벼웠다. 이미 소진해버린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사내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열쇠를 움켜지고 시동을 거는 사내의 손목에서 경쾌함이 전해졌다. 근 넉달 만에 사내는 자동차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활짝 열어둔 채 시원하게 가을밤을 달렸다.
자동차가 해안도로를 끼고 돌자 비릿한 갯내음이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갑자기 사내가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길 한쪽에 세우더니 가만가만 풀섶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끼끽-끼끽, 풀섶 곳곳에서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들이 또렷하게 새어 나왔다. 사내는 차창 밖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혹시 라디오에서 나오는 효과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이얼을 돌려서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줄였다. 도로를 쉭쉭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뚫고서, 높고 맑은 실제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밤을 훤하게 밝혔다. 사내의 얼굴에선 만족스러운 미소가 찬찬히 번지고 사내의 머릿속으로 오래된 기억 하나가 음악처럼 흐른다.
사내가 몹시도 가을을 타던 그 시절, 지금처럼 여름이 다 끝나갈 무렵의 밤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난데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그 소리가 보일러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가 살던 집의 보일러는 문제가 생기면 귀뚜라미 소리를 내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보일러는 멀쩡했고 진짜 귀뚜라미 한 마리가 베란다 어느 한구석에서 귀뚤귀뚤 울어대는 거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는 그 상황이 사내는 몹시도 신기하게 여겨졌다. 잠귀가 예민한 사내의 어머니는 귀뚜라미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잠이 덜깬 얼굴로 사내에게 귀뚜라미를 잡아달라 했지만 사내는 조금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사내는 베란다를 살펴보는 시늉만 하다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어머니께 귀뚜라미가 어디 숨어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둘러댔다.
그날 이후 밤이면 사내의 집에서는 청명한 귀뚜라미 소리가 보름동안 흘러나왔다. 사내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해 가을밤을 만끽했고, 귀뚜라미 소리가 밤새 흐르던 그 보름 동안은 이상하게도 사내는 우울하거나 고독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내는 왠지 모르게 귀뚜라미라는 곤충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주머니 속에 든 사내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아빠! 어디에요? 언제 오는데요?”
여덟 살 먹은 딸아이의 쫀득쫀득한 음성이 귀뚜라미 소리를 일순간 밀어낸다. 딸아이의 그것은 귀뚜라미의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고 맑고 아름답다.
딸아이의 웃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사내로 하여금 딸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고, 순식간에 사내는 허허거리며 밝은 웃음을 터트린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이제 35개월 된 아들 녀석이 아빠를 바꾸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짧은 통화를 끝낸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퇴근길, 오늘도 사내는 여전히 그립기만한 그의 가족을 향해 달려간다.
백미러에 비쳐진 사내의 얼굴이 계속 싱글거리고 있다.
오늘 저녁, 사내는 깔깔거리는 두 아이와 속 깊고 너그러운 아내를 앞장 세워 높디 높은 귀뚜라미 소리를 맞으러 산책을 나갈 작정이다. 여전히 사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이다.
또하나, 사내는 오늘이 가기 전에 가을에 관한 짧은 글 한편을 쓰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에 사내의 가슴이 보름달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다.
사내의 얼굴에선 아직까지 웃음꽃이 사라질 줄을 모른다.
사내는 서둘러 이 가을을 잡아 타고서 자동차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가족들이 기다리는 홈 스위트 홈을 향해 날아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시 가을은 오고, 또다시 사내는 가을을 탔지만
예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스치듯 가을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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