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조나단 레빈
- 출연 조셉 고든-레빗 세스 로겐 안나 켄드릭
영화도, 환자도 그냥 지켜봐라.. 감정이입이여 이제 그만...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영화 50/50
-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씌여진 소설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역시 황순원의 '소나기'다.
- 아직 사랑을 알기엔 조금 이른 나이의 시골소년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과
- 죽기 전 소년에 대한 기억을 함께 그대로 묻어달라고 했던, 그러니까 그 날 소년과의 추억이 깃든 그 옷을 입혀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소년은 엄마의 입에서 그 사실을 흘려 듣게 되고.. 그리하여 독자는 이 소나기에 대해 아주 긴 여운을 간직하게 되고...
- 아름답게 슬프고 덤덤하게 슬픈 그 소설 소나기.... 이 소나기의 시점이 바로 '3인칭 관찰자시점'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의 힘은 바로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듯
그 사건과는 작가는 무관하다는 듯
그저 담담하게 객관화시키는 듯
시침을 뚝때면서 그저 독자들의 감정선을 쉽게 무장해제시키게 만든다.
하지만 작가는 그가 독자에게 보여 주고픈 장면들 하나하나를 곳곳에 설치해두기 마련이다.
마치 여러 길목 요소요소에 보이지 장애물을 배치하여 독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가가 원하는 그 길... 그 길목에 작가는 마지막 덫을 설치하고 독자가 지나가기를 차분히 기다린다.
결국 독자는 그 덫이 설치된 길을 지나가게 되고, 때로는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한채 그 길이 마치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길인양, 그 길을 유유히 지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독자는 작가에 의해 철저하게 선택된 그 오솔길을 독자 자신이 오래전에 꾸며놓은 길인듯 아주아주 마음에 든다며 휘파람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가 이런 교묘한 덫들을 잘만 배치한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감정흐름이 길어지게 하고.. 그 뒷맛(여운)또한 더욱 더 길게 가져가도록 만드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주는 장점이 아닐까한다.
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영화에도 적용이되어 카메라는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니면 멀리서 그도 아니면 아주 가까이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 50/50은 바로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영화이다.
주인공은 심각한 그러니까 생존율 50%의 암에 걸리게 되지만....
감독은 관객들에게 감정이입을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봐달라고, 바라보기만 해달라고 하며 주인공과의 거리를 어느정도 유지하며
영화를 천천히 따라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관객에게 퀴즈를 풀라거나, 중대한 질병에 걸렸으니 함께 고민해보자거나, 주인공의 고통에 한번 젖어들라거나, 남녀주인공들끼리 얼마나 사랑이 절절한지 알아봐 달라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보아 달라고
암에 걸린 주인공도 뭐 별로 특별할 것없는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거기에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유난 떨것 없다고, 시대의 가십거리에 너무 요동치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감독의 요구에 맞추어 관객은 주인공과 조금 떨어져 걸으며 그를 그저 지켜본다.
심각하지만 오히려 주인공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애써 걱정을 주인공에게 표현한다면
생뚱맞을 것이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듯하다.
어쩌면 암에 걸린 사람에게 필요한 건 위로의 말이 아니라 그저 지켜보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를 환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대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게 필요한 것이라고, 어설프게 걱정하는 연기를 중대한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하는 것은
당신도 또 환자도 어색하기만 할꺼라고...
누구를 위해 위로를 하는가?
환자를 위해? 천만에 그런 어설픈 위로는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인 것이다.
당신이 무슨 말이라도 이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해야만 할것 같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불편해 지기 때문에 어설픈 위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원하는 것은 어설프고 어색한 위로따위가 아니라
그냥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그저 당신과 일상을 마주하는 그런 동등한 대우일지도 모른다.
환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와 똑같은 휴먼이라고, 그것이 그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점에서 이 영화 50/50은 꽤나 훌륭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관객들의 감정의 흐름을 어설프게 조정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요소들을 영화 곳곳에 작위적으로 배치시킴으로써(관객은 사실 이것이 감독이 철저하게 작위적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모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아주 조금씩 주인공의 심정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의 소제목을 "당신의 친구가 중병에 걸렸을 때 당신이 가져야할 태도"라는 다분히 의학적이고 심리적인 제목을 붙여 주고 싶다.
어쩌면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 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 이해가 더욱더 쉽게 될지 모르겠다.
이 영화 50/50에는 심각한 주인공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코믹스런 코드가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 또한 심각하고 슬픈 면도 조금 엿보인다. 또한 로맨틱한 면도 엿보인다.
하지만 마지막에 심리치료사와 주인공이 연결되는 조금은 식상한(사실은 나도 은연중에 연결되기를 바랬지만) 로맨스는 잘 만든 영화에 사족과 같은 아쉬움이다.
굳이 로맨스를 살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주인공이 수술후 심리치료사에게 전화를 걸고 헬로우라고 말하는 전화 씬만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음악이 흐르며 수술대 위에 누운 주인공과 상담 치료를 하는 심리치료사와 주인공의 부모와 불안으로 서성이는 친구의 장면으로만 앤딩을 맺었더라면 어땠을까?
한편의 멋진 예술영화가 탄생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내 욕심일 것이다.
나 또한 그저 이 영화를 봤다고 지금처럼 이러쿵 저러쿵 논할 것이아니라 그저 지켜보는 애정이 필요했던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영화 50/50은 좋은 영화이고, 재미있는 영화이고, 덤덤하면서도 여운이 좀 남는 영화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덤덤한 연기는 감독의 의도에 딱맞아 떨어져 있다. 연기 참 좋다!
초반부의 카메라 워크도 특이해서 집중을 하게 만든다.
주인공의 반대방향으로 카메라가 멀어진다든지... 분활된 화면과, 아웃 포커스를 쓰는 것이 좀 색다르고 오히려 초반부에 영화 장면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영화 50/50을 그대에게 추천한다. 재미있냐고?
늘 그렇듯 확율은 50/50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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