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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마, 마흔 쯤 되어본다면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알 수 있을 거다.

수많은 절대 긍정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자기개발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뜻한대로, 마음 먹은대로, 말하는대로, 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거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운칠기삼'이 주는 뜻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고,

그러다가 세상의 파도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나라는 개인적 존재는 정말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도 들고,

가끔은 끊없이 밀려드는 시스템의 파도 속에서 아둥바둥 애를 쓰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시스템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탈도 꿈꿔보지만

문밖 세상은 아득하고 두렵기만하다.

그럴수록 스스로의 자존은 점점 위축되어 농구공 크기가 되었다가, 축구공, 배구공, 야구공, 골프공... 마침내 콩알만해지거나 미세먼지처럼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삶이 녹록하지 않고, 뜻한 바를 펼치기 쉽지 않다고, 마음 먹는 순간이

어쩌면 뻑뻑하게 녹슨 문을 스스로 열어저치고 나가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삶은 쉽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이상하게 무섭고 거대한 세상은 조금 만만하게 여겨지기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되기 어려운 세상이라면야...

어차피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이미 그간의 삶에서 체득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럴 바에야 소중한 내 자존의 덩어리를 콩알만큼 작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는 거다.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 시스템인데... 운칠기삼인 바에야... 차라리

나를 단단하게 지켜나가자는 거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오늘 연속으로 밀려드는 조금 높은 파도에 부딪혀서 심장과 폐장 위장은 온통 쫄깃해지고, 그 좁은 틈바구니로 강박이 몰려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오는 짜증과 어쩐지 거대한 시스템 밖에 홀로 휑뎅그렁하게 버려진 듯한 느낌이 나를 옥죄어왔다.

아내는 이럴 땐 깊게 숨을 고르라고 말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자 그 말은 하얗게 변한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고,

몸과 마음은 그물 속 멸치처럼 이리저리 파닥파닥 튀고 난리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되어 어차피 세상일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되새김했다.

어차피...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셔츠에 단추를 채워 나가듯 하나하나 관문을 통과하는 일 밖에는 달리 다른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관우의 오관돌파가 떠오른 건... 왜 일까?

어차피 운칠기삼이라면... 어차피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다면...

에라, 모르겠다..

첫 단추부터, 첫 관문부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운칠기삼이라 하지 않던가?

 

내겐 술잔이 식기 전에 돌아온다 말했던 관우의 기백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일단 첫문을 향해 두벅두벅 걸어간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듯 오늘도 세상은 돌아갔다.

 

 

 

# 아내의 조언에 따라 깊은 숨을 고르고 난후 나는 톡톡톡 자판을 두르렸다. 이글은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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