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나와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가장 많이 보낸 친구... 정말 대단하고 멋진 친구...
그의 사진을 보면 늘 이런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친구 국민학교 6학년 때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에... 그는
나의 꿈은 세계정복이 라고 말했다.. 난 그의 발표를 듣고 엉뚱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어릴적에도 이 사진처럼 약간은 엉뚱한 분위기를 풍겼다...
역시 그의 정신세계는 어릴 적부터 독특했다... 국민학교에서도 장난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거다..
내가 아는 현욱은 산만하고 장난을 잘쳤다... 그러나 그쪽 방면으로는 아이디어가 넘쳤던 것같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가벼운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라고 말하고 싶은 친구,,
앞서도 말했지만 국민학교4학년에 재성과 나와 현욱은 같은 반이었다..
처음부터 현욱은 나랑 어울리지 않았다.. 뭐 서로 다른 유형의 인간이었다고 해두자..
그래서인지 국민학교 4학년때 현욱과 관련된 기억은 거의 없다..
나는 손야구를 잘했고... 박민수, 양승호 등등의 아이들과 방과후면 거의 손야구를 해댔다...
지금은 이 친구들 뭐하는지.. 헤헤
하여간 당시 프로야구가 창단되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비베어스 어린이 회원이었다.
한마디로 야구는 인기 절정이었다.. 윤동균, 김우열, 신경식,박철순 등은
아이들에게 정말 대단한 선수들로 여겨졌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네..)
하여간 난 그때 현욱이 뭘했는지 알수가 없다.. 하여간 부류가 다른 인간었다,,,,
확실한 것은 나같이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리고 6학년때 현욱과 나는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도 사실 현욱과의 관계는 4학년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2년을 보니 그전보다는 친숙하기는 했을 거다..
현욱은 장난을 잘쳤고.. 특히... 교과서에 움직이는 만화를 그리거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요상한 게임을 창작하여 몇몇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현욱의 책상주위에 몰려 현욱이 만든 게임을 한번 해보려고 웅성웅성
거렸다... 사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번은 현욱이가 만든 게임을 하곤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연습장에다 1층 2층 3층으로 된 게임을 만들고 거기에
괴물이나 갖갖이 함정들을 만든다... 예를 들어 해적이 나타났다...전부 그림이다.
그럼 당신은 무슨 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1. 총(그림을 그렸다) 2. 칼 3. 손으로 4. 철퇴
정답 : 4. 철퇴
정답이 철퇴인 이유는 아무 이유없다. 그저 현욱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의 단계를 거쳐 목표에 도달하는 게임이었다.
당시로써는 정말 기발한 게임이었다.. 현욱이가 만든 게임을 시작으로
우리반에는 현욱이가 만든 게임의 아류작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현욱은 틈만나면 요상한 놀이를 만들어 놀곤 했다..
예를 들면 똥파리 잡기놀이.. 하여간 봄방학때 하루를 이 놀이 덕분에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아이었다..
그래도 현욱과의 관계는 아직도 그저그랬다...
친구가 되기에는 나와는 좀 다른 차원의 아이라는 생각..
그때는 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좋았고 장난이
넘 심한 현욱은 왠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현욱은 6학년 졸업식에 전교생앞에서 상을 받게 된다...
졸업식 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도데체 저 아이가 무슨 상?
아! 제가 그래도 장난과 놀이 말고도 뭔가 잘하는 건 있나보구나! 그러니 상을 탔지...
중학교에 올라가 그때 어떻게 상을 탔냐는 내 물음에
현욱은 이렇게 말했다.
악독하기로 유명했던 당시 담임 선생님이
하도 현욱 아버님의 그림 한점 달라고 해서 줬다... 그것밖이다.. 라고.
그러다가 6학년 학기초에 교식 나무바닥에 초칠을 하면서 현욱이가 고스트바스트와 터미네이터에 대한
영화이야기를 아이들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나
끼어 들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두 영화 모두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극장에 간다는 것은 내 용돈으로는 참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형이나 누나가 있으면 몰라도..
현욱과 관련된 또하나의 기억은 여름 방학때 친구들과 수영장에 가자고 했는데.. 친구녀석중
현욱이를 떠올리며 함께가자며 집을 찾아 갔더니... 동생(박현근)이 빌려온 게임기에 코를 박고 우리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예전부터 현욱은 오락에 미쳐있었더랬다...
결국 수영장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갔었다.
그러나가 또 어느 날
학교 정문 옆에 타이어를 박아 놓은 근처에서 청소를 할일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끼리 모여
우연히 영화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서부영화 이야기...
극장에서 개봉한 최신영화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 명화극장에서 틀어 준
영화는 누구보다도 자신있었다...
특히, 서부영화라면 나를 따라올 아이가 없었다...
하이눈의 게리쿠퍼, 폴뉴먼, 로버트 레드포트의 내일을 향해 쏴라, 황야의 은하 1불,
황야에 7인, 석양의 무법자, 장고 등등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레
내쪽으로 이동이 되었는데... 그때 끝까지 나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던 친구가 바로 현욱이었다..
그때 마직막까지 나와 주고 받았던 영화가 바로 튜니티 시리즈였다..(원제 MY name is nobody!)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말 유쾌한 대화였던 것 같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이런 저런 서부영화를
들먹여가며 짜릿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현욱과 조금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우리는 졸업을 했다... 우리 때는 졸업을 하기전에 뺑뺑이를 돌렸는데...
그와 내가 같은 중학교로 들어 가게 된것이다.
처음 창신 중학교를 찾아 갈때 현욱과 나는 함께 했고.. 이게 개기가 되어 우리는 본격적인
친구수업을 쌓아 갔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공통점은 별로 없었는데
같은 학교라는 것과 영화가 우리를 이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그 이후로 중학교 3년 내내 정말 열심히도 붙어 다녔다... !!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질기게 질기게 붙어 다녀도 좀처럼 질리지 않는 친구였다..
우리는 거의 매일 하교길을 함께 왔다.. 북마산에서 중앙동까지 무려 여덟 정거장 정도를 노닥거리며
군것질 하며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며.. 이야기를 해도 해도 끝이 나질 않았던,,, 그래서
심지어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현욱이 집까지 현욱이를 바래다 주로 갔다가...
다시... 우리집으로 함께 왔다가.. 다시 현욱이 집으로 갔다가...
이렇게 질기게 질기게 놀았던 것갔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현욱이가 사랑스러워 진다... ^^
지금은 사랑스럽지는 않다... 난 남자지 동성애자가 아니다..
현욱이하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어요..
걷다가 깡패도 만나고.. 돈도 뺏기고.. 다음에 깡패를 만났을 때는 우리가 깡패를 겁주기도 하고,
떡복이도 사먹고, 오락실에서 야구 오락을 하기도 하고,
거짓말 같지만 세상에 떠돌 것 같은 온갖 이야기들은 다했던 것같다..
서원곡이나 무학산으로 싸돌아다니기도 하고, 휴일이면 현욱이를 따라 만화방에도 가고..
하여간 수없이 많은 소일들을 그와 함께 했었다..
but, 단 한가지
운동은 그와 함께 해본 기억이 없다..
현욱은
중학교를 가서도 국민학교처럼 변함이 없었다.. 교과서에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고
장난을 치고, 특히 내가 좋아 한 장난은...
보물찾기(현욱이가 힌트를 적은 쪽지를 내게 주면 나는 보물의 행적을 추적추적한다... 그리고 보물을
찾아 내는 보람이란... 그리고 현욱이가 만든 보물 힌트는 정말 대단했다.. 현욱은 그림 솜씨가 있어서
항상 아기자기하게 힌트를 만들었고 세심하게 하나하나 힌트를 추적해나가는 일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마 현욱도 자기가 종이에다 힌트를 만드는 것에 대단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아이들 골려주기...
예를 들면...
신지헌...
골리기...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신지헌은 1학년 말까지 내 이름이 "창신중"인 줄 알았다...
내 가방 멜방에다 창신중학교에 다녔음으로 창신중이라고 적었는데... 현욱이가 내 이름을
창신중이라고 말했기에 나도 창신중이라고 지헌에게 나를 소개했다...
지헌이는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나중에는 찰떡같이 믿었다... ^^
그리고 별명을 "박차고 나온 순돌"이라고 불렀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게 내가 현욱이를 보고 쌍둥이라고 말했다... 현욱이는
나와 맞장구를 쳐서 쌍둥이인척했고.,.,,
1년동안 그 아이에게 형은 박현욱 동생은 박현근... 으로 행세하며,..,
그 아이를 놀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순돌왈: "어이 현욱아!!"
현욱왈: "니 누군데 우리 행님 이름 부르노? 니 네 아나?"
"나는 박현근인데.."
손돌왈: "아! 미안 나는 니 형님 친군데... 똑같아서 몰라봤다.."
뭐 이런 식으로 1년동안 쌍둥이 행세를 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창신중과 쌍둥이 사건은 너무 재미있네...
그리고 현욱과 함께한 일중에 기억하는 것 한가지...
당시 현욱 집 다락방에는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빼앗을 걸로 사료되는
포르노 소설... 제목이... "황홀한 사춘기"가 있었는데...
보여 준다 보여준다 하면서 본 일은 없었고...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쯤에 마산에 로타리를 끼고 있는 전신전화국 앞에서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고.. 카바이트 등이 붉게, 몽롱하게 성호기심이 강한 아이 둘을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는 포르노 소설을 한권 샀다... 아마 현욱이의 추천이었던 것 같다...
당시 포르노소설계의 베스트 셀러!!
황홀한 사춘기...가격은 1500원
그리고 내가 먼저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제목처럼 황홀하게, 황홀하게 사춘기의 한 순간을 탐닉했었다..
하여간 그시절 현욱과 나는 단짝이었다...
그러다가
out of sight, out of mind!
각자 다른 고등학교를 들어 가면서 현욱과 나는 약간 떨어졌던 것 같다...
특히, 나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낙방을 하고 현욱이는 붙었기에
안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나였는데... 자격지심이 생겨 났기에.. 그리고
주말이 아니면 시간내기도 쉽지 않았기에.. 예전처럼 찰떡마냥 붙어 다닐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에게 현욱은 멋진 시한편을 써주었는데.. 지금 다시 보아도
감동이 뭇어 나는 시이다...
여기에 그가 쓴 시를 소개하겠다..
창욱님 보시오.
슬퍼 눈물 흘리지 마오.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소.
몸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한마음
늙어 백발이 되어 죽어가더라도 우리는 친구요,
관속에 들어가 땅속에 묻히더라도 우리는 친구요,
천국과 지옥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친구요,
뱀과 개구리로 환생하더라도 우리는 역시 친구요,
딴말은 구질구질 할 뿐이요, 기분만 우울하게 할 뿐입니다.
졸업식 마치고 자전거 타고 가지 않으려오.
공설운동장에 가서 번데기를 먹읍시다.
그리고 청강고등학교가 멀다고 상심마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던데, 고생좀 많이 하시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현욱. 1989.2.14
졸업식 전에 현욱이 건네준 편지를 보고 솔직히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점점 더 나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열등감은 그와의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 편지를 찾기위해 옛날 편지들을 정리하다보니.. 현욱이로 부터
1987년 부터 대학교 때까지 약 40통 가량 서신 교환을 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감동과 함께 웃음도 나고 신기하기도 했다..
참! 예나지금이나 그놈 참! 글씨 잘쓴다... 만화도 잘 그리고 참 엉뚱하다..
하여간 20년 가까이 묵은 편지들을 정리하면서 풋풋한 감동이 밀려와 잠시 기분이 좋았다.
현욱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은 앞서서도 말했지만
그 자신은 늘 그림을 못 그린다며 말했다...
현욱의 상상력은 가히 뛰어났다..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상상화를 그렸는데...
보통 나같은 사람은 해저세계라든지... 우주세계라든지...
평범한 상상화를 그렸는데... 현욱의 그림은 그림도 잘 그렸을 뿐만아니라
그 소재가 독특했다..
원시 정글에 식인종들이 한 사람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처형하는 걸 그렸는데...
참! 독특한 아이구나...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현욱과 한 기억을 더듬더듬거리니까...
무수히 많이 기억의 파편들로 인해 정리가 제되로 되지 않은 느낌이다.
그만큼 청소년기에 내게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이었다.
1학년 쯤, 중학교 한번은 뜬금없이
무학산 꼭 대기에다 자동차 메달을 무슨 보물처럼 묻고 오기도 했고
모교인 완월국민학교에다 타임캡슐을 파묻고 우리가 40이 되었을 때 다시 찾으로 오자는
약속도 했었다..
사실 우리는 한번 무학산 꼭대기에 묻어둔 메달을 찾아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시절.. 한참 많은 것이 궁금했을 청소년기에
같이 영화를 보거나 만화를 보거나 싸돌아 다니거나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무수한 생각들을,
경험들을 함께 함으로 완전히 서로 다른 성격의 우리는
아직도 만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정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그림을 잘 그리는, 기발한 생각의 그가
그가 가진 재능의 방면으로 진로를 선택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건 그의 인생이지 나의 인생이 아님으로
난 그가 아니라는 걸 알기때문에
그냥 오랜 친구로 바라 볼뿐이다..
지난 편지를 뒤적이며 한때는 그와 내가 얼마나 서로를 일치시켜려고 노력을 했던가를
알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서로 다른 인간임을 인정하기 까지는 10년이라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부관계도 다르지 않을 꺼라 생각한다.
서로 미친듯이 사랑스럽다가도
식어버리고 결국 그간 나누었던 세월의 흔적들을 공유하며
이제는 서로에게 익숙해진, 서로가 다른 사람임을 너무 잘 알게 되어
편안하고 싸울 일이 적어지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처음의 불꽃 튀는 사랑과 우정은 늘
그리움을 몰고 오는 것이다.
현욱편은
불쑥불숙 비집고 나오는 기억이 너무 많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정말 차근차근 기억을 옮겨보고 싶습니다.
다음은 완엉남(완전 엉뚱한 남자) 원대희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