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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아이

아이가 3살이 되면서부터

내 얼굴이 아이를 향하게 되는 순간 자연스러운 웃음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잘 웃는다. 그게 습관인 것 같다..

아이의 맑은 웃음을 바라보며 "경이롭다"는 단어가 전혀 거리낌없이 옴팡 전해지는 것이다.

아이의 웃는 얼굴 속에서 경이를 느끼게 되는 것은

더이상 스스로에게 발견하기 힘든 절대 "순수"가 물씬 풍겨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아이었을 때, 지니고 있었던 순수에 대한 노스텔지아인 것이다.

나도 그랬고 내 부모도, 내 부모의 부모도, 역시 그랬을 것이다.

 

아이의 웃음을 보며 녀석을 바싹 안아 올리는 그 순간,

그 순간 만큼은...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아이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게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일방적인,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웃으며 장난을 칠때

우리는 아이에게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배워나간다.

거기엔...

내 부모의 마음도,

내게서 희미해졌던 절대 순수의 느낌도,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자신의 성격과 행동도,  

열혈 아줌마의 그악스런 자식 사랑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미 다 커버린 것(사람, 동물등)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어린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귀여움이

알알이 들어 앉아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은 아이의 볼을 쓰다듬는 것은 같은 사랑의 표현임에도

아내의 볼을 그윽하게 쓰다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인 것이다.    

 

 

 

 

사랑,

남녀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모두 같은 이름..

아주 같은 느낌일 수도..

하지만 아주 다른 느낌일 수도 있는

말로는 형언하기 힘든... 미묘하지만 완전히 다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의 뿌리는  

남녀의 사랑이 있은 연후에야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인과관계의 파생 고리..

그러므로 남녀의 사랑이 부모라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남녀의 사랑에 대한 아들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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