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이 되면서부터 아이가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이는 5살이다.)
평소 아주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까탈은 있어서...
아이가 물건들을 마구 흐트려 놓거나 벽지에다 그림을 힘차게 그려넣는 것이 못마땅했다.
내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될 수 있으면 이런 아이의 행동들을 통제하지 않기를 원했다.
아이의 창의성의 씨앗을 잘 가꾸어 주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마찰은 있었지만...
아내의 말이 옳은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했다.
지난해 연말 우리는 집을 옮겼다...
당연히 이사온 집에는 새 벽지를 발랐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이 도는 평이한 벽지, 아이의 방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기린이 그려진 하얀바탕에 노란 빛이 도는 벽지를..
근데... 아이는 이사간 다음 날부터 벽과 붙박이 장이 화이트보드라도 되는 것처럼 낙서를 했다..
'토토로'를 그려 넣고, 뽀로로 캐릭터들을 그려넣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 아빠 그리고 스스로를 그려 넣었다.
나는 아이가 낙서를 했다는 아내의 말에 기분이 상해서 물수건을 들고 문제의 장소 앞으로 다가갔다.
근데 아이의 낙서가 이제는 더 이상 보기 싫은 낙서가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그림이었다. 우리 가족의 그림..
그것도 커다란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이걸 지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매정하게 지우기에는 아이의 작품?에 녹아 있는 순수한 이미지가 아쉬웠다.
그래서 그대로 놓아두고 다음부터는 벽에다 그리지 말라고 주의만 주고 돌아섰다.
다음 날..
아내는 커다란 2절지를 사가지고 와서 벽에 찍찍이를 활용해 붙여 놓고 아이에게 여기다가 마음 껏 그려도 된다고 말했다.
그후로
아이의 그림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었다.
스케지북이나 A4에는 할머니가, 토토로가, 엄마와 아빠가, 때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놀이터가, 때로는 자동차가 그려졌고...
색깔 또한 한 두가지에서 이제는 분홍과 초록 노랑 파랑이 알록달록 어우러져 있어
마치 그것들이 샤갈의 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어제 저녁 집으로 들어서니 아이가 4절지 스케지북에 그려진 제 그림을 자랑을 한다.
오! 위대할 손!!
오! 피카소와 미로가 달리와 샤갈이 여기에 다 모여있구먼 그래!!
지금 아이의 방에는
사쿠라 큐레이터가 잘 기획한,
알록알록한 작품들이
엉성한 종이 액자 속에..
벽면을 가르는 한 줄 실위에서 작은 집게에 집혀,
혹은 하얀 붙박이장 위에 벽화로 남아 있다.
어쩌면 조만간 아이의 그림 중에 괜찮은 것들은 모아 작은 전람회라도 열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피곤한 몸이지만... 오늘 저녁 또한
아이의 그림과 그 색감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