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권을 읽다가 문득 깨닮은 바가 있어
직관적으로 떠오른 단상을 메모 해두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여기에 한바탕 풀어 재쳐 본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농상업 위주로 돌아가던 경제 시스템이 급격히 무너진다. 지방의 농민들은 일자리 찾아 도시로 도시로 이동을 했고, 인구가 급격히 팽창한 도시는 그 분포를 넓혀가면서 각종 범죄와 환경오염, 전염병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자리를 얻으려고 사람들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서 임금 또한 분명 낮게 책정이 되었을 테지만, 가족 성원이 굶어 죽지는 않았다.
각박했지만 순박한 사람들은 자녀의 입 속으로 일용의 양식이 들어가는 것에 감사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에게로 급격한 자본 집중이 이루어지면서 마르크스 등의 학자는 자본주의의 병태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그 결과 막시즘을 도입한 소련의 볼세비키, 블라드미르 레닌에 의해 공산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결국 공산주의라는 것은 자본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부산물이라고 봐도 크게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냉전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의 진영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진영의 팽팽한 대립은 결국 공산주의를 낳게한 어머니 자본주의의 우세승으로 치달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확실한 자본주의 세력의 KO승으로 일단락 된다.
바야흐로 대세는 자본, 혹은 자유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칼 막스의 지적데로 병폐는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폐단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 분명한 세상 이치에서 이런 병폐쯤은 그닥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만큼 무시해도 좋았다. 자본주의가 주는 그 쾌감에 서서히 물이 든 인류는 그들이 예전과 달리 변질된 사고를 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부지불식간에 자본주의는 의식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 마저도 장악하게 된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가 변질시킨 사람들의 사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래와 같은 것일 것이다.
"생산성을 위해 빠른 것은 좋다."
"커다란 기계문명은 대단한 발명이고, 이 발명은 세상을 끝없이 이롭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비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신령한 존재와 마음을 나누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융통성이 없이 정직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철저히 무시되었으며,
대신,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사람들의 머릿 속을 서서히 점령하기 시작한다.
"기계 장치에 친숙할 수 있어야 하며, 기계를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전문지식이 깊은 사람, 똑똑한 사람, 말 잘하는 사람, 사회적 계급이 높은 사람, 큰 부를 일구어 낸 사람, 직장이 튼튼한 사람,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특히 우리나라는 육,칠, 팔십 년대를 거치며 과거의 두리뭉실하고 모호하고 자연 친화적인 상대적인 사고에서 서양으로부터 전수받은 합리적이고 자연 지배적인 사고로의 의식의 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기계를 다루는데 있어 의식이 딱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이지 두리뭉실하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이런 사고들을 재빠르게 잡아 낸 사람들은
나날이 똑똑해 졌고, 기계를 잘 다룰 줄 알았고, 한분야에 전문가가 되었고,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용어들을 써가며 말을 잘했고, 부를 일구어 냈고, 고소득을 올리는 좋은 직장을 잡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얼리 아답터'들을 보면서 처음에 보냈던 냉소를 거두고 재빨리 그들의 코드를 얼리 아답터들 처럼 맞추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런 사고들은 천천히 진행되더니 급기야 가속도가 붙어서 너도나도 자본주의를 향해 마구 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경제발전이라는 멋진 성과를 이루어 냈다.
또한 그 와중에 그들이 과거에 장착하고 있던 두터운 옷은 이미 그 가치를 상실했음으로 너도나도 벋어 던져 버리고 가볍고 보온까지 잘 되는 첨단기술의 옷을 시작했다.
그것은 흡사 우리나라가 구한말에서 근대를 넘어 현대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집안에 있던 도자기나, 다락방에서 곰팡내를 풍기고 있던 빛바랜 그림, 혹은 돌로 만든 무거운 절구통, 혹은 부끄럽고 거추장스러운 요강, 심심하면 녹이 슬던 유기그릇, 집한 켠에서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반다지를 비롯해서 대대로 내려오던 물건들을 스스럼 없이 내다버렸던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것이 사라진 집 안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각종 플라스틱이나 스텐이레스 제품들로 앞을 다투어 채워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이미 먼저 자본을 축적한 이들은 도무지 플라스틱 재질이나 스테인레스 제질의 물건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다 사용하고 있고, 언제라도 구할 수 있는 가치없는 그런 흔한 물건 보다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런 제품들이 가지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금으로 제품을 만들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음으로,
그들은 수소문을 해서 얼마남지 않은 과거의 물건들을 구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우리가 과거 앞을 다투어 내다버렸거나,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파손되거나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그런 물건들이 골동품이란 이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가 내 팽게 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진 않는가?
혹은 시대가 변하는 동안 우리에게서 소리 소문없이 빠져나가 버린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거나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해도 그 소중함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기계화, 자본화, 고속화, 정보화, 전문화, 세계화 등등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버렸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情"이다.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은 즉, 人間美라는 것이다.
기계, 자본, 고속, 전문, 세계, 계급, 고소득 직장, 똑똑한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물질적 성공 등의 낱말에서는 情을 찾을 수가 없다. 인간미가 쫘악 빠져 있는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각박해 졌으며, 경제적 성공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쓸데없는 정보가 넘쳐 났으며, 기계적이고, 딱딱하거나 똑똑한 인간으로 변해왔다.
주위를 둘러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와 같이 똑똑하고, 나와 같이 학벌이 높으며, 나처럼 기계적이고,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가진 모양새로 자신과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로 부터는 결국
사방을 둘러봐도 나와 같은 프로그램을 무장한 사람들 투성이 인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것이다.
그리고 자기와 같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기쁨보다는 환멸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저 놈도, 이 놈도, 모두 나의 경쟁상대라고 생각을 해봐라. 그것은 정말 끔찍한 상상이 아닌가?
사방은 모두 나의 경쟁상대, 무한 경쟁 시대...
마치 칠 팔십 년 대의 어느 가정집을 방문하더라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주방기구와 스텐인레스로 만들어 진 식기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상대에게서 경쟁과 각박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때로는 내 앞에선 그 대상이 이유없이 싫어지기도 할 것이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담고 있는 이기적인 인간을 시도 때도 없이 마주 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바로 이제부터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지금과 같은 팍팍한 사회시스템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똑같이 프로그래밍 된 그런 지리멸렬하거나 획일적인 인간이 아니다.
자! 가만히 생각해 보라. 우리들이 좋아 하는 인간은 어떤 모양새를 지니고 있던가를
돈 많고, 똑똑하고, 정보가 많고, 전문직이며, 학벌이 높으며,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보다는
작은 것도 베풀 줄 알며,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며,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내 진심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들에게 더 다가서고 싶고, 그들의 부탁은 들어 주고 싶으며,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 놓고 싶으며, 그들과 술을 먹고 싶지 않던가?
앞으로의 시대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욱더 인간미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비인간화가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비인간화 될수록 자본과 정보와 지식이 발달할 수록
우리는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사람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미를 키우는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살아 남는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성공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답은 확실하다.
과거,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답이 였다면
지금부터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 성공을 하게 될 것이다.
인간미를 물씬 풍기는 이들이 이제 TV 진품명품에 나와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골동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가 내다 버린 것들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골동품임을 알아야 했듯
우리에게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人間美를 살려 내어야 할 때인 것이다.
당신이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된장찌개를 그리워 하고 있듯
분명, 당신은 지금도 당신이 지니고 있던 인간미를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을 하고 싶은 당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뭐?...
그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人間美(인간다운 따듯한 맛)인 것이다.
# 인간미의 사전적 의미가 '인간다운 맛'이라니 참 웃긴 해석이다. 당연히 인간이라면 인간다운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미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인간다운 맛을 잃어가긴 하나 보다.
인간이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연어나 은어가 귀소본능으로 고향을 찾아 들듯이 우리또한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이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언제나 기본은 인간이다. 인간미를 장착한 연후에 전문가, 부, 속도, 첨단, 자본, 정보 등을 장착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인간미를 장착하는 것이 원하는 곳으로 당신을 인도해줄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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