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우리 사무실에서 매일 박스를 수거해 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가끔씩 그 할머니를 볼 때마다 재작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나곤 해서 할머니께 종종 음료수 한병을 손에 쥐어드리기도 했고, 이번 설에는 식용류 선물을 건네드렸었다.
어제 점심을 먹으려 사원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다가 박스를 정리하고 계시는 할머니 보고 인사를 드렸더니, 할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나지막이 내게 손짓을 하시는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궁금하게 여기며 할머니에게 다가서자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뭔가를 집어 들어 내게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부시럭거리는 붉은 비닐봉지 안에는 작은 종이 박스가 있었고, 박스는 풀어지지 않게 노끈으로 잘 동여 매어져 있었다.
"할머니, 이게 뭡니까?"
"이거 계란인데요, 며칠 전부터 이거 줄라꼬... 근데, 며칠 안 보이데요..."
"아이구, 할머니, 뭐 이런 걸 다 주십니까?"
"그기 아이고... 그래도 이기 유정란이라 귀한 깁니다."
"이 귀한 걸 다 주시고... 할머니, 이거 정말 우리 사원들 하고 잘 먹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니."
감격스럽운 마음으로 영업점으로 돌아와 선물로 받은 상자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 오며 나는 할머니에게 정월 대보름에 사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구입한 쬐그만 땅콩 선물세트를 쥐어드렸다. 이 작은 선물에도 할머니는 고마워 했음은 당연하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그 상자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풀어 보았더니 상자에는 당연히 달걀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감탄사를 내뱉어야만 했다.
아! 참, 정성스럽게도 포장을 하셨구나!
계란은 10개씩 3줄이 있었고, 한 줄씩 한 줄씩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신문지로 돌돌 말아 놓으셨다.
내가 할머니 얼굴을 3일 동안 보지 못했으니까.. 그 동안 할머니는 계란을 수레에 계속 싣고 다니신 거였다.
그래서 계란 몇개는 벌써 깨져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내게 건네준 박스는 우리 사무실에서 주워간 택배 박스일 거고..
계란을 싼 신문지도 우리 사무실에서 내다 놓은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 엉성한 포장 재료를 가지도 멋진 포장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깔끔한 포장용 테이프 대신 푸른 노끈으로 묶여져 있어 마무리가 엉성했고,
에어캡 비닐(일명 뽁뽁이: 공기가 들어가 충격을 막아주는 비닐) 대신 신문지로 싸여 있어 계란 몇 개가 깨져 있었지만...포장 안에 있는 정성만큼은 어떤 홈쇼핑도 따라 올수 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
우리 사원들은 맛있는 계란말이를 먹을 수 있었다.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오늘도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박스를 차근차근 정리하고 계셨다.
덕분에 정말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내 얼굴에서,
이른 봄 햇살이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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