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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거자필반(去者必返)

 8월의 어느 날, 휴가를 내고 아이와 둘이서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캠핑을 나섰다.
 
  캠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보통 캠핑하면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캠핑의자에 앉아 대자연과 함께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 아닐까 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생각하는 이런 캠핑의 한 순간만을 따지자면,
자연과 어울어지는 색다르고, 편안한 시간임에 틀림없겠지만...
캠핑을 나서기 전, 음식준비와 창고에서 캠핑용품을 하나하나 꺼내는 꽤나 신경쓰이는 준비과정과 막상 캠핑장소에 도착해 또다시 장비를 꺼내 펼치고, 텐트를 완성하고서 캠핑용 의자에 깊숙히 틀어박히기 전까지를 말하자면, 특히 그것이 무더운 여름이라면, 그야말로 생고생의 과정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캠핑이라는 것은 잠시잠깐 반짝거리다가 사라져버릴 '달콤한 휴식과 한줌의 여유'를 위해 허리를 수십 번이고 굽혔다가 펼쳐야 하는 성가신 일련의 준비과정과 캠핑을 끝내고도 펼쳐두었던 캠핑장비 수거를 위해 체력과 신경을 곤두 세우는 과정이며,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떡하고 문앞을 버티고 선채 "끝난 줄 알았지? 아니야, 아직 해야할 일이 좀 더 남아있어"라고 얄밉게 말하며 무거운 장비들을 양손에 덜썩 던지고 달아나는 느낌을 주는 정비과정까지 포함한 '꽤나 귀찮은 과정'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나선 이번 캠핑 역시 마찬가지여서 생업의 바쁜 와중에 틈틈히 준비를 하고, 캠핑 전날 퇴근 후, 마트에 들러 음식과 각종 준비물들을 구입하고, 몹시 지친 어깨로 현관문을 밀고 시계를 보았을 때는 이미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무게가 제법 나가고, 그 종류도 다양한 캠핑장비를 자동차 트렁크에 구겨 넣고나자 온몸은 땀에 뒤덥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자 후텁지근한 바람이 얼굴께로 달려들어 더욱 불쾌감이 몰려왔지만 옆좌석의 아이를 향해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출발! 도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라! 신나는 걸로!"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려서는 좌석에 박힌 엉덩이가 욱신거리고 허리가 묵직하게 아파올 무렵이되어,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캠핑장에 도착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장비를 내리고 아이와 함께 돔형 텐트를 펼쳐 세웠을 때는, 또 다시 온몸 구석구석 땀이 비오듯 흘러 입고 있던 옷이 흠뻑 젖어버렸고, 누가 툭 치기만 해도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문득 무릎 아래께가 몹시 가려워서 살펴보니 아이와 내 다리는 온통 모기들의 잔치 자욱의 흔적들로 그득했다. 얼른 챙겨간 물파스를 꺼내 바르긴 했지만...
밀려드는 피로와 짜증, 그리고 게릴라 같은 모기들과 여름의 맹렬한 온도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아는 캠핑은 매번 비슷했다. 편히 쉬려고 온 캠핑은 늘 이렇게 불쾌한 모양새로 시작되곤 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문득 캠핑이 그리워지고, 자연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찰라의 반짝이는 그 순간의 소중함을 도저히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무더위와 피로 그리고 모기 덕분에 나는 완전히 지쳤버렸지만, 이곳 캠핑장은 내가 무슨 보물상자라도 되는냥 여기고 있는 아름다운 칠선계곡을 품고 있어, 시원하게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에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친얼굴로 멍하게 서있는 나를 향해 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빨리 물에 들어가요!" 
 
 정말 영혼이 맑다고 라고 밖에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만화 캐릭터같은, 그런 익살스런 표정로 계곡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재촉하는 아이를 향해 나는 어쩔 수없이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나역시 만화속 주인공처럼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바로 아이와 함께 허둥지둥 수영복으로 갈아입고서 계곡으로 내려가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으로 주춤주춤 발을 움직였다.
 
 "으으으! 아빠, 얼음물처럼 차가워요"
 
나를 돌아보며 말하는 아이의 익살스런 표정, 그 얼굴을 보며 나 역시 크하하! 으으으!를 연발했고, 참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그 순간, 물 표면에 반사되어 튕겨져 나오는 강한 햇살에 눈이 부셔 이마께로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마치 환상처럼, 마법처럼,
내 머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그간의 묵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슬멀스멀 녹아내리며 차가운 계곡물에 씻겨 꾸물꾸물 떠내려가는 것을 본 듯 했다.
 
 밤이되자, 아이와 나는 도시에는 구할 수 없는 지리산 숲의 맑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고, 불을 피우고 바베큐와 감자를 구워 먹었으며, 화로대에서 발갛게 휘날리는 불길에 시선을 사로잡힌 채, 평소에는 마음이 바빠 듣지 못했던 음악을 펼쳐 줄기차게 틀어놓으며, 길게길게 늘어진 지리산의 그윽한 밤시간을 멍하게 날려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모닥불에 멍 때리는 사치스러운 시간이 흘러갔다.   
    
 어쩌면 캠핑은 이런 반짝이는 몇몇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성가시고 귀찮은 준비와 철수, 정비의 피곤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캠핑 뿐이 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많은 일들이 아주 잠깐의 행복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긴 고통과 기다림, 권태와 지루한 반복의 시간을 감수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타인들은 종종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속에 방금 들어와 앉은 사진, 그 찬란한 한 컷의 순간에 종종 매혹되곤 하는 듯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해주신 흔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잔잔한 연못을 매끄럽게 떠다니는 있는 백조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 같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물 속 백조의 발은 연신 종종거리고 있는 다는거 알지?" 
 
 이런 작은 깨닮음과 함께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면, 전혀 의도치 않게 겪게 되는 '우연의 묘미'일 것이다.   
낮선 곳에서 하루는 색다르고도 신기한 경험을 낳기도 하는데, 이 또한 지리한 삶에 있어 제법 오묘한 맛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이번 캠핑에서도 우연의 에피소드를 겪게 되는데....
그 전말은 이러하다.
 
 아이와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다보면 나 또한 순간순간 어린시절의 그 아이로 변해 가는 걸 느끼게 되는데... 
이런 시간들은 캄캄한 여름 밤 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정말 빠작거리며 순식간에 흘러 가버린다.
 차디찬 물 속에서 한 시간 가량을 텀벙거리가다 문득 흐르는 물을 거슬러 한바탕 수영을 하려니, 신고 있는 샌들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래서 물 위로 낮고 비스듬히 솟아오른 수박 크키 만한 바위 위에다 샌들을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는데...
아이와 손바닥으로 서로 물을 뿌려 대는 장난을 치다가 내 강한 물세례에 밀린 아이가 물 속에서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바위에 놓인 샌들 한짝을 건드리게 되고, 이내 샌달은 유속이 빠른 계곡으로 빨려들어 순식간에 떠내려갔다.
 
 "어어어!! 도현아! 샌들!!"
 
 샌들을 쫒아 겅중거리며 전력을 다해 뛰어 보았지만 맨발로는 물 속에 박혀 있는 돌덩이에 발바닥이 아파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발바닥을 파고드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바지런히 하류를 향해 휘적휘적 나아갔다.
하지만, 소중한 내 샌들 한짝은 어디에도 눈에 뛰지 않았다. 빠른 유속때문인지 벌써 하류를 향해 쓸려가버린 듯했다.  
 
 결별, 상실, 아쉬움은 집착을 낳는 것일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하류 쪽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구석구석 샌들 수색을 시작했다. 큰 돌틈과 웅덩이를 살펴보면서 150 미터정도를 내려가서는 다시 원위치로 올라오며 실종자를 찾듯 제법 야무지게 수색을 했고...
또 혹시 몰라 다른 한쪽 샌들을 처음 떠내려 간 위치에서 다시 떠내려 보내며 시뮬레이션을 두차례 해보았다. 작은 폭포에서 잃어버린 샌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안경을 끼고 물거품이 자욱한 깊은 곳을 들여다 보고, 무턱대고 한쪽 다리를 깊숙한 물속에 쑥쑥 찔러 넣고 휘저어보았지만...  실종된 샌들 한짝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대략 1시간 정도의 수색 끝에 아이를 향해 '더 이상은 힘들고, 이제는 수색작전을 종결할 때'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치 아이가 어른을 흉내 내듯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그러나 우스꽝스럽게 선언을 했다.
  
 "할 수 없다! 찜찜하긴 하지만, 이제는 마음에서 샌들을 놓아줄 때인 것 같다! 텐트로 철수!"
 
 상실은 마음 한 켠에 공허를 낳고, 그 공허는 자칫, 집착으로 매워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어렵긴 하지만 우리는 늘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 이런 집착에 빠질 것을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텐트 앞에 남겨진 한짝의 샌들은 외롭고,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사실 그건 샌들이 외롭고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 상실과 공허를 벋어 날수 있고, 그 순간 집착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들었다.
 
 "도현아, 집에 가면, 아빠 샌들 하나 사야겠다. 더 튼튼하고 멋있는 놈으로 다가... 하하하!"
 
 마치 원래부터 호탕한 성품인 듯 과장되게 아이에게 말하고는 텐트로 돌아와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번갈아 들으며 1시간 정도의 휴식을 가지고 난 후, 다시 물놀이를 하러 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조금 우습게도 한쪽 발에는 기우뚱하게 샌들 한짝을 신겨져 있었는데, 비록 한짝 뿐이라 모냥 빠지고 어색하긴 했지만 물놀이를 하기에 맨발보다는 훨씬 편하고 안전해서 한쪽 발만 샌들을 꿰차고서 수영을 하고, 물장난을 쳐대며 또다시 순간순간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서로의 신발을 던지며 놀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냅다 던진 내 신발 한짝이 이웃집 지붕 위로 훌쩍 넘어가 버리고, 도무지 찾을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어서, 하릴없이 발만 구르다가 결국, 체념하고 난 뒤, 불쑥 찾아든 생각은, 날선 목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덤벼들 엄마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재촉하는 친구들과 다시 다른 놀이에 몰두해서는 한쪽 신발만 꿰어찬 채, 절뚝거리며 동네를 돌아 다녔었다. 
놀이에 집중하던 그 시간 만큼은 무섭게 다가올 엄마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놀았다.
 
그때처럼 잃어버린 샌들을 깔끔하게 포기하고는 다시 아이와 물놀이에 열중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우리의 세상은 재미거리로 그득그득 채워져나갔다. 그렇게 재미로 가득찬 시간이 1시간 가량 흘러갔을 때였다.
아래쪽으로 아이와 텀벙텀벙 물장난을 치며 내려가자 가족과 함께 캠핑을 온 남자 한분이 내쪽을 향해 무언가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그건 다름아닌, 내가 3시간 전에 잃어버린 샌들 한짝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샌들 한짝을 크게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이거 찾으러 오셨죠? 방금 떠내려 오더라구요... 그래서 주워 놓았어요."
 
 ".......!!!"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지금 떠내려 왔다구요?"
 
 나는 다시 돌아온 샌들 한짝을 놀랍고도, 신기하고도, 반가운 눈으로 건내 받았고 남자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며 어떨떨한 표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사실, 이 놈을 3시간 전에 잃어 버렸거든요.. 아무리 찾아도 없었는데... 정말 방금 떠내려 왔다구요?"
 
 "네... 방금 여기로 떠내려 왔는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살면서 이렇게까지 샌들 한짝이 반갑고 소중한 적은 없었네요. 하하하!
도현아! 여기봐라! 샌들 찾았다! 샌들 찾았어! 하하하! 하하하!"
 
 그 순간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사자성어는 '거자필반'이었고, 나는 나즈막히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만나야 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고, 돌아와야 할 것은.. .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지. 아무렴, 돌아오기 마련이지..
그런 거겠지... 그렇고 말고... 언젠가는... 이놈처럼 다시 돌아오는 거야!"
 
 그 순간 내 얼굴은... 정말, 내 어린시절 신발 한짝을 잃어버렸던 그날 저녁, 바로 그 순간의 표정과 영락없이 같았을 것이다.  
 
 그날 초저녁 어귀 쯤에 우리집 초인종이 울리고, 호되게 혼이 나고서 울적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의 손에는 잃어버린 내 신발 한짝이 들려져 있었다.
그걸 본 내 얼굴은 함박웃음이 순식간에 피어났고, 마치 마법의 신기한 세상을 방금 구경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얼떨떨하고도 신기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바로 지금도, 그때처럼 어벙벙하고 신기한 표정이 되어
오른손에는 남자에게 건내받은 축축한 샌들 한짝을 꼬옥 쥐고 있었다. 누가 금방이라도 훔쳐가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는 내 얼떨떨한 표정과 손에 들려진 샌들 한짝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고
 
"아빠!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라고 활짝 웃으며 자꾸 물어 왔다.
 
"거자필반(去者必返)!"
 
"예?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또 다시 '거자필반' 이라고 중얼거렸지만 내 목소리는 바위에 부딪치는 물소리에 잠기어 아이는 내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는 연신 싱글거리며
 
"다시 찾았내요! 다시 찾았어요!" 라고 말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향해 물을 뿌려댔다.
 
순간, 우리 앞으로 무지개가 펼쳐졌다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2020년의 어느 여름날이었고,
8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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