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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The show must go on

올해 나이 오십이 되었고, 세월이 주는 무게가 상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언젠가부터 시간의 가속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엉거주춤한 내 앞에서 시간은 서서히 그 이빨을 드러내고는 어느 순간부터 맹렬하게 가속을 붙여

내 몸과 마음을 속수무책으로 갉아먹고 있다는 상상마저 들고 있는 요즘이다.    

 

영원한 것은 시간 외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시간도 영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주에 생성된 블랙홀에 시간마저 꼼짝없이 붙들리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정한 시간의 지배 아래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마저 들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더 빠르게 내 앞을 관통하고 있는 것만 같은 시간.

 

세월의 더께가 덧씌워질수록 불가항력적인 이런 시간의 힘을 조용하고 겸허하게 인정하고, 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상만사에 그저 하릴없이 자세를 낮추고 묵묵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라는 관념이 나를 집어삼킬 듯, 끝 간 데 없는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털썩 맥이 풀리며, 이제는 시간 앞에서는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체념처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부단히 덧씌워진 세월의 중력에 눌린 채 얼떨떨한 상태로 그 자리에서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기억력도, 사고력도, 피부나 근육이나 관절마저도 모두 뻣뻣하게 변해가는 것만 같다.

 

마치 로마시대에 지어진 크고 화려했던 신전이 시간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서서히 낡고 퇴락하다가 종국에는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우리의 운명 또한 그러한 것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시간에 의해 하루하루 부스러지고 있는 중이다. 

최근 들어 시간 앞에서 점점 무기력해지는 스스로를 자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제는 제법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는 어슴푸레한 느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몸과 마음이 본격적으로 늙어 간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는 것을 고분고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 일 것이다. 점점 더 또렷해지는 노화의 신호, 탐탁지 않겠지만 꽤 많은 중년들이 공감하고 있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카이사르의 말처럼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으니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앞을 관통하는 시간을 멈추거나, 거슬러 과거나 미래로 점프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역행하려 든다.

마치 고미술품을 복원하듯, 낡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듯, 한사코 스스로를 예전 모습으로 복원하기를 갈망한다. 

이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접수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으며, 홈쇼핑을 통해 링클케어나 안티에이징 기능성 화장품이나 탈모샴푸, 천연 염색약 혹은 비타민, 루테인 등의 각종 영양제를 주문하는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거스르려는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시간을 역행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천천히 흐르게 하거나 멈추게 하고픈 무의식의 반영일 것이며, 나아가 죽음에 대해 온몸으로 거부하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심리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자연스러움을 넘어 부자연스러움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오히려 거북함과 혐오와 추함이 본능적으로 밀려들며 이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고미술품이나 오래된 건축물이 복원작업을 거친 이후에 생뚱맞은 모습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거나 지나치게 화려하게 변해버려 그전 모습에서 볼 수 있던 쇠락의 아름다움은 아주 사라지고, 생생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부자연스럽고 급기야는 추해 보이는 경우마저 있는데, 이는 젊은 날 아름다웠던 중년의 여배우가 각종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얼굴이 되어 나타났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죽음(나이듦)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공감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아름다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그런 씁쓸한 기분을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시간의 티끌을 고스란히 덮어쓴 얼굴로 묵묵하고 덤덤하게 자신의 남은 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노인에게서 간혹 어떤 숭고함 마저도 느끼게 되며, 죽음을 향해 쇠락해가는 한 인간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는 것은

세상 만물이 가지는 소멸성, 즉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은 아닐까 한다.    

 

하루하루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묵묵하며 고요하게 침잠한다.

그것들은 많은 경우 조용하게 따듯하다.  

비록 긴 세월에 닳아서 누덕누덕해진 채 낡고 초라한 모습일 지라도 말이다.

 

삶을 더해 가면 갈수록,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나이.  

어쩌면 서서히 소멸하기 위해 하나의 생이 오롯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지난날 그토록 아우성쳤는지도 모르겠다.   


그간 의식하지 못했거나 애써 모른 척했지만 이제는 조용히 소멸을 인정하게 되는 나이.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겸손이 자연스레 따라오며 나와 같이 하루하루 소멸하고 있는 타인을 향한 너그러움과 따듯한 시선이 깊어진다.  


맥이 빠지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에게 남겨진 생이 있는 이상  

자신에게 허락된 그 무대에서 공연은 계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객석이 만석이 되었건, 텅 비어 있건 간에, 좌우지간 당신의 무대에서 공연은 펼쳐져야만 할 것 같다.  

꼬집어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어쩐지 그것이 내 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만 같다.  
그야말로 'the show must go on' 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영양제를 챙기고, 주말엔 아내와 숲 속 산책을 나서며,

이제 몸과 마음을 무턱대고 사용하지 않을 작정을 한다.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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