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NC파크로 야구를 보러 갔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려는 듯 저녁 부슬비가 힘없이 내리고 있었다.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이른바 낙동강 더비가 펼쳐지는 날이자,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의 은퇴투어를 치르는 날이었다. 야구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 주변 교통은 늘 혼잡했다. 더군다나 어제는 비까지 내리고 있어 평소보다 교통 사정은 더 나빴다. 가까스로 근처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성큼성큼 NC파크로 들어서자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이 확 터져 나왔다.
예매를 해둔 좌석은 공교롭게도 다이노스의 응원석이 아니라 3루 측 자이언츠의 응원석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행 중 자이언츠의 열성팬을 배려한 것으로 몇 달 전 NC파크 낙동강 더비에서는 다이노스 응원석에서 관전을 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석번호를 확인하며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고막을 찢을 듯한 함성이 귀전을 때렸다. 순간 주변 관중이 발칵 뒤집혔고 저 멀리 좌측 펜스로 야구공이 새초롬하게 넘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 홈런을 맞았구나!
옆을 돌아보니 자이언츠의 팬인 일행이 벌떡 일어나 만세 동작을 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고 나를 뺀 주위의 자이언츠 열성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쁨에 함성을 꽥꽥 질러대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홈런이라니... 뭔가 찜찜했다. 텁텁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치킨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 우적우적 씹어댔다.
적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전장에서 나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주눅이 들면 안 된다. 굴하지 않고 당당히 다이노스를 응원하자!'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후로도 자이언츠 선수들의 방망이 소리는 딱! 딱! 쉴 새 없이 들려왔고 여지없이 주변에서는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이 계속 터져 나왔다.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는 강했고 다이노스의 투수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더군다나 투수 교체 직후 다이노스의 3루수가 평범한 땅볼을 '알까기'하는 바람에 불펜 투수에게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 다이노스는 볼넷과 실책성 플레이가 계속되었고 전광판 스코어를 보니 8:0이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당연하게도 야구는 지루했고 재미가 1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경기는 망한 것 같았다. 6회 말, 4번 양의지의 솔로 홈런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적진에서 홀로 앉아있는 쪽팔림은 막아주었다.
8회 말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9:3이었고 승리의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다이노스와의 의리를 지키기로 했다. 결국 다이노스는 9:3으로 패했고 나는 서둘러 NC파크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SNS에 입장 티켓 사진과 경기장 풍경 사진과 함께
"아! 3:9 패! 경기 내용이 영~~~" 이라고 올렸다.
그러자 잠시 뒤 지인의 짤막한 댓글이 올라왔다.
"9:3 승"
순간, 픽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는 자이언츠의 팬이었기 때문에 내 문장을 정정해준 거였다.
짧은 멘트였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야! 그게 아니지. 9:3 승리였고, 경기 내용이 정말 좋았다고!"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옆에서 같은 경기를 보았던 자이언츠 팬인 일행에게는 멋지고 재미있는 경기였으며, 기분 좋은 밤이 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 누군가의 슬픔이 누군가에겐 기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구나.
그러니 내 기쁨이 누군가에겐 슬픔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며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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