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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나이가 들어서 좋습니다

 주말에 지리산 피아골과 하동 섬진강변을 거닐고 왔다.
 
 지난달 신불산 간월재에서 억새를 보고는 아줌마처럼 좋아하던 친구가(친구는 아저씨다.) 문득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을 제대로 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피아골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1월 초로 날을 잡았는데 뜻밖의 비 소식에 한 주가 미루어져 지난 주말에야 친구 세 명이 모여 피아골을 찾았다.
 
 초입인 직전마을에 주차를 하고 계곡을 따라 걸어가는 중에 한 친구가 '피아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물어왔다.
이에 가을이면 핏빛처럼 아름답게 단풍이 든다고 해서 피아골이라고 농을 쳤고, 친구는 그러냐고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피아골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곡식인 피를 많이 심어 피밭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피아골로 접어들면서부터 자꾸 고개를 갸웃뚱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핏빛처럼 붉은 단풍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도무지 그런 풍경이 아닌 탓이었다. 절정이 지났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곳곳에 단풍이 울긋불긋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계곡 사이로 곱게 물들었을 단풍은 사라지고 쓸쓸한 낙엽만이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조금 더 계곡을 올라가 삼홍소(三紅沼 : 단풍이 붉고, 계곡물에 비친 단풍이 붉고, 그걸 보는 이의 얼굴마저도 붉게 보인다는 이름)에 도착하면 그래도 제법 단풍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삼홍소 역시 낙엽만 수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득 미당선생의 ’선운사 동구'가 떠올랐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선운사 동구> 전문    
 
시에서 미당선생의 마음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아골 골짝으로 / 붉게 물든 단풍을 보러 갔더니 / 단풍은 벌써 사라지고 / 쓸쓸한 낙엽만 수북이 밟히더라. / 그것도 목이 쉬어 바스락거리더라. <피아골 삼홍소>
 
씁쓸한 마음에 이렇게 빗대어 보았다. 기억 속에 그 좋았던 단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낙엽만이 수북이 밟혀왔다.
 
아무튼 우리는 삼홍소 근처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와 족발과 그리고 컵라면을 먹었다. 사라진 단풍은 아쉬웠지만 친구와 지리산과 술과 안주가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점심 무렵엔 하동으로 넘어와 섬진강변에서 재첩국과 재첩무침을 먹었다. 재첩국과 재첩무침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으나 이 역시 친구들과 함께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반주로 소맥 몇 잔을 기울이고 나니, 다들 취기가 올라 기분이 풀어지며 더 좋았다.    
식당을 나와 술도 깰 겸 해서 섬진강 길을 천천히 걸었다. 친구는 강가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를 보고 좋다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고, 여인의 살결처럼 보드랍게 흐르는 섬진강을 향해 또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는 휴대전화로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기에 바빴고, 아줌마들처럼 수다를 떨었다. 아줌마처럼 '어머, 저기 봐, 예쁘지?'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고는 '멋있다! 좋다!' 등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전에 없이 들떠있었다.   
해가 서서히 기우는 섬진강에서 우리는 아이처럼 물수제비를 띄우며 내기를 했고, 서로를 보며 킥킥거리기도 하면서 한동안 그렇게 놀았다. 아무런 사심이 없던 어린 시절의 한 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화개장터에 들러 수수부꾸미 호떡을 맛있게 먹었고, 가평 잣엿(좀 우습지만 하동 화개장터에 가평 잣엿이 유명하다며 친구가 사 왔다. 차 안에서 엿을 꺼내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고소했고, 너무 달지 않았다. 그러니 잊지 마시라. 하동 화개장터에 가면 가평 잣엿을 구입해 오는 걸)을 구입해서 한 팩씩 나누었다.       
 
 그날 우리는 섬진강을 걸으며 우리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오십이 된 우리는 나이를 먹어선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세월에 풍파에 씻겨선지는 몰라도 아무튼 우리는 여성스러워졌고 섬진강처럼 부드러워졌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모습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서로 느낄 수 있었다.
사위가 고즈넉한 가운데 늦가을의 해는 아주 천천히 강 건너 광양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머리 위로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파란 가을하늘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가끔 바람에 억새가 떼 지어 흔들리고
섬진강은 마치 멈춘 듯 조용히 흐르고
중년의 친구들은 강변을 따라 천천히 사라져 갔다. 
 
나이 드는 것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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